6.25전쟁 중 신앙 지키다 임자진리교회 교인 등과 순교

▲이판일 장로
전남 신안군 임자면 진리에서 태어난 이판일 장로는 동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부친이 농사를 돕다가 1930년 문준경 전도사의 전도를 받고 신자가 됐다.

그는 1934년 이성봉 목사의 집례로 여신자 5명과 더불어 진리교회 최초의 세례교인이 되고 동시에 여신도 3명과 함께 최초의 집사로 임명 받았다. 그는 동생 이판성의 가족까지 교회로 인도하고 주민 전도에 힘썼다.

그는 교회 초가지붕의 이엉을 새로 얹은 후 자기집 이엉을 얹을 정도로 신앙이 깊었고 그의 두 형제가 교역자 생활비를 전담하다시피 했으며 방학이 끝나 문준경 전도사가 학업을 위해 상경하면 대신 교회를 돌보았다.

일제 때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그의 신앙 절개를 꺽지 않았다. 해방 후 그는 폐쇄된 교회를 재건하고 1946년 장로 장립을 받았다.

1950년 6.25 동란이 일어나 지역이 공산화되어 교회 예배가 중지되자 같은 해 9월24일 밀실에서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되어 목포 정치보위소로 끌려가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목포에서 석방된 그는 순교를 각오하고 임자도 진리교회로 돌아온 지 1주일 되는 10월 5일 새벽 2시, 공산해안경비대의 둔주소 소장이 악도들을 인솔하고 그와 이판성 집사의 집을 급습, 22명의 가족과 36명의 교인들을 묶어 처형장으로 끌고 가 무참히 살해했다. 

당시 목포에 거주하여 화를 면한 그의 장남 이인재는 1950년 10월 30일 국군과 함께 고향에 돌아와 가족 22명이 모두 처참하게 순교 당했음을 확인했으며 아버지의 농지를 팔아 그 지역에 기념교회를 세워 악도들과 그 가족들이 신앙생활을 하도록 했다.

본 교단은 1990년 7월 임자진리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진리교회 앞마당에 ‘48인 순교기념탑’을 세워 그들의 순교신앙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