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많이 깐 씨암탉’ 죄명으로 몽둥이·총 맞아 순교

▲문준경 전도사
섬교회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는 전남 신안 암태에서 태어났다. 나이 17세에 지도에 사는 정 씨와 결혼했으나 목포에 소실을 둔 정 씨에게 버림 받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부모에게 정성을 다했다.

시부모의 도움으로 한글을 깨우친 문 전도사는 시아버지가 작고하자 37세에 목포 북교동에 방을 얻어 삯바느질품을 팔았다. 북교동교회 여자 신자의 전도로 북교동교회에 출석한 문 전도사는 장석조 목사의 가르침에 은혜를 받아 찬송과 전도의 삶을 살았다.

집사직분을 받은 후 친정가족을 전도하려다 부친을 설득할 성경의 깊은 진리가 부족함을 깨달아 경성성서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기도했다.

1931년 북교동교회에 부임한 이성봉 목사의 추천으로 경성성서학원에 청강생으로 입학한 문 전도사는 첫 방학 때 신안군 임자로 가서 임자진리교회를 개척하고 20명의 신자와 60명의 주일학생을 모았으며 가을학기에 올라와 교회개척을 보고 후 정식학생이 됐다.

졸업 후 섬마다 교회를 세운다는 목표로 섬을 찾아 증동리교회, 대초리교회, 제원교회, 우전리교회 등 5개 교회를 세웠다. 당시 목회자가 부족하여 이 교회, 저 교회로 순회하면서 집회를 인도하고 섬마을 병자들을 기도로 고치기도 했다.

섬마을 교역자 충당을 위해 신앙이 있는 청년들을 개인적으로 훈련시켜 전도인으로 활용했고 능력있는 사람을 서울신학교로 추천하여 섬마을 목회자가 되게 했다.

1950년 6.25전쟁이 나자 지방의 공산분자들에게 체포되어 목포에 압송돼 옥살이를 하다 아군의 인천상륙 소식에 공산군이 도주하여 옥중에서 풀려나 증동리로 돌아왔으나 지방 공산주의자들에게 다시 체포되어 증동리 백사장에서 그해 10월 5일 새벽,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란 죄명으로 몽둥이와 총에 맞아 59세로 순교했다.

그녀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의 양딸 백정희 전도사를 살려달라고 부탁했으며 “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죄 많은 이 영혼을 받아주소서”라는 작지만 또렷한 음성을 내 밷으며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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