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문제로 일제에 항거…모진 고문 받아

박봉진 목사는 경기도 평택 출생이다. 16세까지 한학을 공부하다 부자의 꿈을 품고 17세에 수원으로 가서 직장을 알아보려 다니다가 어느 교회 앞에서 전도하는 청년을 만나 전도를 받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금은방의 견습공으로, 금은세공의 기술을 익힌 후 고향 평택에 금은방 가게를 개설한 후 가게에 오는 사람을 전도하다가 1920년 평택교회를 개척하고 1923년 사재를 털어 교회당을 건축했다.
수원으로 진출해 70평 규모의 백화점을 개설한 그는 평택, 천안 등 7개 지역에 지점을 개설하는 등 30대에 큰 부자가 됐지만 40대에 사업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도 중 사업을 정리하게 됐다.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한 박 목사는 재학 중 장호원교회를 개척했으며 1938년 목사안수를 받음과 동시에 여주교회를 거쳐 1940년 철원교회로 파송 받았다.
1943년 5월, 전국교역자 일제 검속 때 경찰서에 구금되어 모진 심문을 받던 중 재림은 물론 신사참배까지 반대한다고 하여 더욱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해 말 성결교회가 해산되어 모든 성직자들이 석방됐으나 그는 신사참배 문제로 석방되지 않고 계속 심문과 고문을 받으며 신앙투쟁을 하다 1943년 8월 10일 가족에게 만신창이가 된 몸이 인계되고 8월 15일 새벽 병원에서 소천했다.
남원준 기자
ccmju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