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교회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
젊은 신앙 열정 간직·교회 역사 산증인
간척지에 10만여평 농사, 작은교회 쌀 지원도

유 장로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땅 끝 동네인 해남에서 태어나 자라고 부모를 이어 농사를 짓고 고향 토박이로 살아왔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해남내사교회를 지키며 신앙을 키워 교회 지킴이가 됐다.
“젊었을 때는 열심 하나만으로 교회 일에 적극 참여했던 것 같아요. 시골 어른들을 모시고 주일예배도 참석하고 새벽예배에도 열심을 냈어요.”
그는 마을 어르신들을 경운기로 모시고 교회에 갔다. 버스가 없었던 시절 그의 경운기는 교회 버스요ㅆ다. 농사가 바빠 주일 오전에 로터리를 치다가도 예배시간만 되면 집에 들어와 경운기에 짐칸을 달아 성도들을 태우러 다녔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는 해남내사교회의 장로가 됐고 이후 교회의 든든한 일꾼으로 사역하게 됐다.
천성이 농사꾼인 그는 2003년 간척을 통해 확보된 고천암 10만여평을 불하받아 그는 이곳에 논농사를 시작했다. 천성이 농사꾼인 이곳에 농사를 지어 식량을 증산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의 열심으로 매년 6000여 가마 이상을 수확하는 대농이 됐다. 특히 그가 토지를 불하받는 과정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솔직히 입찰 과정에 가격을 어떻게 써내야 하는지 고민이었습니다. 혼자 고민하다가 답이 없어 교회에 와서 기도했고 목사님께 모든 것을 맡기다시피 해서 금액을 써 냈습니다. 가격을 잘못 써서 고치기도 하고 공탁금을 잘못 적어내 추가 납부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는 원하던 토지의 대부분을 불하받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입찰금액을 들었을 때 써낸 입찰금액이 아슬아슬하게 불하받을 수 있었음을 알게 됐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음에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농사를 하면서 유 장로는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쌀 가격이 너무 하락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한만큼 수익을 낼 수는 없지만 논농사를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그의 고민이다. 농사야말로 우리 사회를 떠받드는 기본적인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렵게 얻는 땅에서 생산된 쌀을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지원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에서 농사하게 하심에 감사드리는 의미도 있지만 이 땅에 생산된 쌀이 작은교회 목회자 가정에 힘이 되고, 그 힘으로 교회 부흥과 성장에 힘쓰기를 바래서다.
교회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한 유재옥 장로는 지난해 장립 받은 윤상기 장로와 함께 목회자를 도와 교회를 든든히 하는 역할을 감당해 오고 있다. 2005년 가을 교회를 봉헌할 때 남은 빚을 성도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전액 헌금하는 등 교회를 위한 헌신에 동참하고 있다. 담임 김형근 목사가 이들 두 사람을 야긴과 보아스로 소개하는 이유다.
“앞으로 목사님과 함께 교회 옆에 복지센터 마련해 지역사회를 더욱 섬길 수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고 싶다”는 유재옥 장로는 농사꾼이지만 마음은 푸른논처럼 넓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