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표면화된 것이지만 성결교단 내에 거짓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관계를 뒤집고 비틀어 순수한 성결인들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갖게 만든다. 총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보니 그 때 접한 다양한 내용을 조금씩 사용하고 핵심 부분만을 조금 비틀면 순수한 성결가족들은 이들의 말에 솔깃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특히 이들의 행위를 ‘잘못된 것’이라 알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고, 그들 또한 성결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이들은 교회 일부에서 발생하는 목사와 장로의 갈등이 마치 교단 전체에 만연한 문제인양 치부한다. 구체적 사실에 입각하여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모든 것이 문제’라는 태도를 보여준다. 문제의 양면에 있음에도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도식화하여 비판하고 이를 통해 상대방을 매도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면 이를 기회로 여론화 시키고 논쟁화 시켜 ‘부정적 효과(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나?)’를 거두려 한다.

또한 폭력을 휘두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징계 받지 않았음이 명확한 사실임에도 징계했다고 거짓을 말하고 권력에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보다 피해를 입힌 사람의 편에 선다. 있지도 아니한 사실을 가지고 음모론을 들고 나오고 자신들은 개혁을 하려는 사람들이고 상대방은 권력에 빌붙은 자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주장에 솔깃하게 넘어가는 우리의 태도와 수준이 문제이긴 하겠지만, 도대체 교단을 분열시키고 갈등시켜서 무엇을 얻어내려는 것인지, 그렇게 거짓을 말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답답하다.

우리 교회 내에 목사와 장로간의 갈등이 있는가? 새로 청빙된 목회자를 압박하는 장로들이 있는가? 목사에게 대들고 ‘당신 목사 맞냐’고 비난하는 장로들이 있는가? 솔직히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면 거꾸로 공사석에서 장로는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목회자도 있는가? 아버지 나이인 장로들에게 반말하고 설교시간에 비난하는 목사들은 있는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도 마찬가지다.

조금 질문의 수준을 높여 새로 부임해서 교회를 부흥성장시키고자 하는데 목회자의 추진력에 제동을 거는 장로와 당회원들이 있는가? 새로 부임한 젊은 담임목사는 교회의 상황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알아서 한다고 하면서 목회자의 권한을 제약하는 당회원이 있는가? 목회자의 리더십이 교회성장을 가져온다면서 독선적으로 당회를 이끌어 가는 목회자가 있는가? 사모가 지나치게 교회 일에 관여하고 이를 문제제기한 당회원을 비난하고 소원하게 대하는 목회자가 있는가? 교회 형편보다 고급스런 차량을 구입하거나 재정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목회자는 있는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수준이다. 다만 이러한 상황과 모습은 하나님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인간적 수준이 낳은 모습이요, 그래서 더욱 반성하며 사라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제목이다.

교회를 세운 분은 하나님이요, 목사와 장로라는 직분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다. 그동안 우리는 그 ‘지위’에 초점을 맞춰온 것이 사실이다. 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계신다. 동시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를 사용하고 활용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인간이 어떻게 그 제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영광을 가릴 수 있다.

그동안 성결교회는 제도를 잘 활용해 왔다. 다른 교파의 전통적 제도 또한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갈등이 있었지만 슬기롭게 극복해 왔고 앞으로도 슬기롭게 극복해 갈 것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 과정에서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과거의 일방적인 리더십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목회자들과 모든 회원이 동일한 권한을 갖는 ‘민주적(?)’ 운영구조 만을 강조하는 장로들이 상호 이해나 대화, 양보 등이 없어지면서 문제는 확대된다.

어떤 형태로 운영하든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교회를 바로 세우는 방향에 있어야 한다. 목사나 장로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요 교회이기 때문이다. 갈등이 확대되고 극단적인 경우로 치달리는 것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기준에 미달되었기 때문임을 명심하고 더욱 자신을 갈고 닦는 절차탁마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고 인간 사회에서 갈등과 일정한 줄다리기는 불가피하다. 서로의 주장이 만나고 부딪치고, 그 과정을 통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음 또한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 지적하고픈 핵심은 이러한 의견 차이를 갈등으로 만들고 점차 확대시키며 극한으로 치달리게 만드는 세력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는 점이다.

‘갈등의 유발자’로 불리는 이들은 언제나 틈을 찾고 갈등을 즐기며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남들을 자신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있다는 자만심 또한 크다. 이러한 사람들을 전통적인 교회는 분열의 영, 사탄이라 칭하기도 했다. 우리 안에 이러한 세력이 숨어든 것은 아닌지 조심하며 갈등을 극단으로 가져가지 않으려는 슬기로운 노력이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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