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제발 천천히 오시옵소서!
주의 재림은 ‘두려운 날’이지만 동시에 ‘산 소망’의 날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성도들에게 재림 또는 종말은 두려운 날로 인식되고 있다. 그 날은 난리와 난리, 기근, 지진, 엄청난 박해,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 등과 연관되면서 무서운 날이 되고 말았고, 거기다가 짐승의 표, 666 등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은 성도들을 공포와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리하여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초대 성도들의 간절한 신앙고백이 두려움에 떠는 오늘의 성도들에게는 ‘주여 천천히 오시옵소서!’라고 읊조리는 입 안의 말이 되고 말았다.
거기다가 오늘의 풍요와 평안이 임박한 재림의 신앙을 약하게 하고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신앙을 낳고 있다. 사실 재림은 고난의 날에 가장 강력한 위로와 소망을 주는 복음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고난 속에서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면서 참고 신앙을 지켰다. 머지않아 만왕의 왕이 오시면, 지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고난받는 성도들은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리라는 믿음은 소망을 낳았고, 이 소망이 모진 현실과 핍박을 견딜 수 있는 근원적 힘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풍요와 평안의 세월을 살고 있다. 대부분 서구의 기독교인들은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으며, 2차 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안정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벌써부터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속으로 노래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늘의 한국인은 5000년 역사상 최고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가난과 질병, 멸시와 억압과 전쟁의 날들은 지나고 풍요와 안정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물론 남북문제, 남남갈등, 소득격차에 따른 상대적 빈곤층과 절대적 빈곤층이 없는 것은 이니다. 하지만 50~60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안정되고 잘 사는 것은 사실이다. 세계 10대 무역국이고,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와 겨룰 수 있는 인물과 제품들이 수두룩하다. 개인 소득이 약 2만불 수준이지만, 삶의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서 부러움이 별로 없는 듯하다. 성도들도 대부분이 중산층에 속하고 있다. 중산층은 현실안주형이 많은데, 거기에 따라서 신앙도 현실안주형으로 바뀌어 진 듯하다. 당연히 현세계의 우주적 대 변혁을 가져 올 재림(종말) 보다는 ‘지금이 좋사오니’라고 속으로 노래하게 되었다.
목회자들 가운데도 재림이 별로 반갑지 않다는 그룹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부 목회자들 중에서는 오늘의 풍요와 안정과 대접이 너무나 좋은 나머지 재림은 먼 훗날의 사건이거나 이미 잊어버린 사건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중세 천주교회가 자기들이 다스리는 현세계가 천년왕국이라고 착각하고, 자기들의 영화와 지배권을 영속화하려고 했던 것처럼, 목회자들 가운데도 ‘지금, 여기에서’ 너무나 만족하기 때문에 재림은 생각하기 싫은 주제가 되었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힘들고 어려웠던 초년의 목회를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이제는‘고진감래’의 열매를 즐기는데, ‘종말’은 어림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위의 상황들이 오늘날 교회에서 재림(종말)의 신앙이 약해지고 메시지가 사라지게 된 이유들에 해당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시대적인 이유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희망의 새 천년’을 온 지구인이 외친 것도 재림신앙이 약화되고 심지어 사라지게 된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온 지구인이 한 입으로 새 천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합창하였으니, 앞으로 천년동안은 주님이 오시기가 미안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인류의 희망을(?)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내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서울신학대학교의 표어도 “백년을 준비한 대학, 천년을 이끌어 갈 대학”이다.
재림의 때, 징조,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순서, 그리고 장소에 대해서 아직까지 우리는 정답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가 확신할 것은 1) 주님은 다시 오신다, 2) 부활이 있다, 3) 심판이 있다, 4)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다, 그리고 5) 예수 믿는 사람은 거기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외치는 음성을 듣는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