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神癒) : 信愈도 治癒도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는 치유의식이 있고, 또 나름대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기독교와 타종교의 치유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다. 타 종교에서 치유의 기적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능력이다. 예를 들면 무당이 병을 고친다면, 이는 그 무당이 쌓은 치성이나 정성을 통해서 나타나는 자신의 능력이다. 무당의 능력이 귀신을 제압하여 병이 낫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든 치유사건은 무당 자신이 가진 능력이다. 중이 병을 고친다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경우도 중 자신이 가진 도력으로 나타나는 기적이다. 수도를 많이 한 중은 여러 가지 신기한 일들을 행하게 되는데, 이는 그 자신의 수도의 결과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기 때문에 중이나 무당이나 언제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런 것들은 신유의 은총을 얻는데 간접적 혹은 이차적 원인은 될 수 있으나, 직접적 혹은 일차적 원인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은총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라고 고백하여야 한다. 기독교에서 신유는 필요한 때에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사건이지, 결코 사역자 자신의 능력이 아니다. 성결교회에서는 하나님이 고쳐주신다는 뜻에서 信愈가 아닌 神癒로 쓰고 있다. 영어로도 faith healing이 아니라 divine healing으로 쓰고 있다. 이는 신유의 올바른 표현이다.
교회에서 흔히 신유(神癒)와 치유(治癒)를 혼동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신유는 하나님이 고쳐주시는 것이고, 치유는 사역자가 신유의 은사나 능력을 받아서 사용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신유의 은사나 능력을 주시고, 그것을 받아서 사역자는 치유사역을 행한다. 그러므로 신유의 은사 또는 은혜가 바른 표현이고, 치유의 은사나 능력이 아니라 치유사역이 바른 표현이다.
신유의 은사를 받은 사역자가 치유사역을 행할 때도 나을 수도 있고 낫지 못할 수도 있다. 신유의 은사나 능력은 사역자에 미리 주어지는 예금증서와 같은 것이 아니다. 만약 예금증서와 같다면 사역자는 언제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인출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신유는 필요할 때에만 하나님이 주시고 행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에는 상담이나 정신요법을 통한 치유사역을 교회에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는 과학을 이용한 치유사역이지 신유는 아니다. 이런 면에서 신유는 의학(의술과 의약)을 부인하지 않는다. 신앙인이 의학을 활용하는 것은 신앙과 불신앙의 문제가 아니다. 신유를 믿기 때문에 의학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신유를 자신의 전유물처럼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신유는 사역자나 신자의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의학을 활용하는 문제는 신자 자신의 선택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 때는 신유를 믿는다고 의학을 부인한 적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자세이다. 심프손(A,B.Simpson)에 의하여 아프리카로 간 선교사들 중에는 의학을 활용하지 않음으로 해서 아프리카의 풍토병에 희생된 선교사들이 많았다. 이는 심프손 자신의 신유에 대한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웰빙(well being)이란 말과 함께 요즘에는 웰 다잉(well dying)이란 말까지 등장하면서 건강이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런데 건강이 이미 신유의 은혜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성결교회 헌법에는 신유는 “신자가 하나님의 보호로 항상 건강 중에 지내는 것과 또는 병들 때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음을 얻는 것을 가리킴이니 이 은사는 우리 육신을 완전케 하는 복음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금 건강한 것이 신유의 은혜임을 알아 감사하고, 건강을 주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