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12)
우리나라에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케이블 TV 중에 바둑만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채널이 있을 정도다. 어떤 사람은 바둑판을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정사각형의 작은 바둑판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초보시절에는 아무 생각없이 바둑을 두게 되지만 상당한 고수들은 바둑 한 점 한 점을 둘 때 바둑판 전체를 보고 생각하며 두게 된다. 만약 한 수라도 잘못하여 실수하게 되면 한 점이 전체에 또는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심사숙고하여 두게 된다.
바둑에서 복기라는 것이 있다. 해설하는 사람이 대국을 두는 사람이 끝나고 해설을 하면서 그 많은 바둑 돌을 차례대로 순서에 따라 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참 신기하게 보일 때가 있다. 암기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바둑을 두는 사람은 한 점 둘 때 마다 의미를 갖고 두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전체가 연결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지나온 삶도 알고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의미의 연속인 시간들이었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싸워야 한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혼자 힘으로는 힘들다. 세상은 골리앗과 같이 우리가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로 등장하고 있다. 인생의 바둑판에서 하나님이 바둑알의 흰돌처럼 우리들을 움직이실 때 승리할 수 있다.
본문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12절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평소에 유하던 다락방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였는데 그 수는 약 120명쯤 되었다. 그들은 거기서 함께 기도했고 일꾼을 세웠다. 본문은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예루살렘은 머물기 싫은 곳이다. 예수님을 죽인 악한 세력이 가득한 곳이다. 또한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이었기에 예루살렘에 연고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다.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면서 기도에 힘썼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보인 첫 번째 모습은 철저한 순종이다. 순종은 제자의 생명이다. 스승의 말씀을 거역하면 제자라고 할 수 없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첫 번째 표적이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다. 그 기적의 역사에 물 떠온 하인들의 순종이 있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잔치집에서 심부름하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을 하였다.
연회장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알았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가운데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역을 하셨다.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사람이 되는 비결은 무엇인가? 순종이다. 나 혼자서 하려고 하면 힘만 든다.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움직이신다.
순종한다는 말의 의미는 듣는다는 말에서 온 것이다. 듣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한 것이다. 경청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말씀은 음식과 약이 되는 것이다.
공항에 가면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그 비행기들이 자기가 뜨고 싶으면 뜨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관리하는 관제탑이 있다. 만약 관제탑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비행 조종사 마음대로 이, 착륙을 하게 되면 큰 대형사고가 난다.
그러므로 비행사들은 관제탑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하게 듣고 운항을 하게 된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인생의 관제탑 되신 주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자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