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우리 한국 사회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하나의 공통적인 신드롬이 있다. 기성종교에 대하여서는 냉소적이지만 우리가 알 수없는 어떤 영적 신비현상이나 정체가 불분명한 신성에 대하여서는 오히려 그 실체를 인정하는 모순이 그것이다. 종교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 놓을 수 있다.
아마 세속화라는 치명적 바이러스가 그 원인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독교 내부에서 보았을 때에도 이러한 모순적 현상이 존재한다. 조직신학을 강의하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묻다보면 언제나 창조주, 전지전능, 무소부재, 영원성, 사랑 등의 수식어나 초절하신 하나님에 대한 답변이 나오지만 정확하게 예수그리스도를 연상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라는 답변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사실 기독교회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시키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정확하게 모르는 현대적 종교성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로서는 매우 개탄스러운 일인 것이다.
기독교회의 하나님 이해
첫째, 기독교회의 하나님 이해는 널리 퍼져있는 일반종교의 특성과는 매우 다르다. 우선 범신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다스리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만 그 개개의 사건에서 주어진 피조적 존재들을 하나님이라고 혼동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유대교나 회교의 일신론과도 다르다. 그들, 유대교나 회교는 그야말로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 신은 초절하고 하늘 높은 곳에 있기에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서 토라라든지, 천사, 선지자 등의 매개자들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이 중간 매개자들은 절대로 신적 존재가 아니고 모두 피조물들이다. 그래서 유일신교이고 단일신교이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유대교나 회교와 같은 유일신교나 단일신교가 아니다. 하나님 이해에 있어서 우리는 전적으로 다른 역사적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는 하나의 역사적 계시 사건을 통하여 형성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는 그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
둘째로, 기독교회의 하나님 이해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이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말하는데, 왠, 예수 그리스도?”라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구세주라고는 알고 있지만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직접 말하는 것이 거북해 보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성서와 초대교회의 놀람은 바로 이 사건에 기초해 있다.
사실 그들도 놀라는 가운데, 두렵고, 어찌 보면 다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떨림으로 이 계시를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연약한 한 사람이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라는 역사적 실재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인자’, ‘메시야’ 등 다양한 칭호를 통해 말하고 있지만, 이것들은 한결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그의 신성에 대한 표식들이다. 우리가 보기에 가당치 않을 일, 있을 수 없는 일, 우리와 같은 인간 안에서 하나님이 바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이 기독교 하나님 이해의 핵심인 것이다.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적 실재가 기독교 하나님 이해의 핵심이고 이 뿌리를 통해서 경험되고 형성된 구원자 하나님 이해가 바로 삼위일체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다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또 하나, 이 가운데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우리에게 전달되며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즉, 전능하신 성부께서 우리를 위해 천지를 창조하시고 구원의 계획을 갖고 계셨으며 이제 그 계획을 직접 실행하시기 위해서 이 마지막 날에 성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낮고 천한 몸으로 임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인간의 삶을 경험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셨고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존귀하게 만드신 것이다.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로 만들기 위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삼위일체의 하나님 이해는 어떤 추상적 논리나 추론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날마다 삶속에서 경험되는 구원자 하나님의 실천적 이해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