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실직한 돈리는 어느 고급식당 앞에서 동정을 구하는데 어떤 부인이 주는 1달러를 받는다. 그 중 50센트로 요기를 하고 있던 돈리는 한 노인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고 50센트를 꺼내어 노인에게 빵을 사주었다. 그런데 노인은 떼어먹던 빵을 종이에 싸고 있었다. “내일 먹으려고 싸갑니까?” 하는 돈리의 물음에 노인은 “아닙니다. 저 길가에 신문팔이 아이가 있는데 그 놈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오.” 두 사람은 빵조각을 가지고 아이에게 갔다. 아이가 빵을 먹는데 길 잃은 개 한 마리가 다가왔다. 아이는 나머지 빵을 개에게 던져 주고는 신문을 팔러 뛰어가고 노인도 일감을 찾으러 갔다. “나도 이렇게 있을 수 없지.” 돈리는 길 잃은 개의 목에서 주소를 찾아 그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주인은 고맙다고 10달러를 주면서 “당신 같이 양심적이고 자상한 사람을 내 사무실에서 고용하고 싶소. 내일 나를 찾아오시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돈리는 그 작은 빵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의 움직임을 느꼈다. 작지만 나누는 아가페 사랑에서 이룩된 새로운 창조의 신비를 실감했고, 두 뺨 위에 흘러내리는 감동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최근 미국에서 갑부들에 의해 시작된 기부운동(The Giving pledge) 6주 만에 40명이 동참했는데 그들이 내놓기로 한 그 액수가 1250억 달러(15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세기의 기부를 엮어낸 부자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 회장 부부다. 1250억 달러는 남미 페루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거액이다. 이들은 수십억 달러의 재산 가운데 절반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돈리의 예를 다시 들것도 없이 이들은 많이 내놓을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기부의 비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의 톰 테일러 부부는 성 프랜시스의 경구를 인용하여 “위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주고 용서할 때 얻는 능동적 기쁨이 소유하고 갖고 차지할 때 얻는 수동적 기쁨보다 훨씬 크다”고 간증했다. 비즈니스 와이어 창업과 로리로키는 사랑과 윤리의 높은 실천인 기부행위를 두고 “농부들이 땅에서 수확한 것을 비료를 통해 다시 땅에 돌려주듯 자신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 한다.”

이들의 나눔과 기부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홍보쇼”라고 냉소하거나 상속세를 내지 않고 자선으로 포장한다거나 차라리 세금을 정직하게 내라고 일갈하지만 버핏 회장은 카네기와 록펠러가 기부를 실천한 것처럼 우리도 모범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포브스 억만장자 명단에 있는 70~80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설득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안면이 전혀 없는데도 선뜻 동의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버핏과 게이츠 회장은 앞으로 중국과 인도 등 외국 갑부들을 만나 기부선언에 동참하도록 하는 한편 포브스 갑부 명단에 있는 미국의 젊은 갑부들도 이 운동에 끌어들일 계획이다. 이 기부운동이 향후 전세계적으로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다.

물론 미국의 갑부들은 미국의 경제구조상 그런지는 몰라도 그들의 선배 재벌 록펠러와 카네기나 우리나라 재벌들처럼 중공업분야와 같이 몸을 내던져 벌어들이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기 재산절반을 싹둑 잘라 내놓는다는 것이 어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이러한 미국 부자들의 가슴 뭉클한 사연들과 최근 이명박 대통령께서 한국재벌들에게 전에 없이 쓴 소리를 발한 것을 비교해 보면서 묘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수녀시인 이해인은 “주여/ 당신의 생애는 그렇게도 철저한/ 나눔의 생애로 부서졌건만/ 우리의 날들은 어찌 이리/ 소유를 위해서만 숨이 차게 바쁜지/ 시시로 당신 앞에 성찰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참다운 나눔의 행위를 통해서만 당신과의 만남이, 영적 성숙이/ 천국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비단 미국의 재벌들만이 아니라 한국의 재벌과 교회들도 진정한 나눔이란 ‘숨어서도 만족하는 기도의 행위인 것’을 잊지 말고 우선 작은 주머니부터 풀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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