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 서울신학대학 강의실에서 어느 신학생이 교수에게 물었다. “성경 이외에 신학생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한 권만 추천한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시겠습니까?” 한참을 고개를 떨군 채 심사숙고하던 교수의 입에서는 루터나 칼빈 또는 바르트나 틸리히의 책을 추천할 것이라는 학생들의 기대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이름이 소개되었다. “나로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일세.”

▨… ‘백치’에서 우리는 나스타샤 필리포브나를 만날 수 있다. 그녀는 미모를 자랑하기 위해서 값비싼 보석과 유행하는 옷에 끝없이 게걸대며, 행동은 제멋대로이면서도 교양인인 체 우쭐대고, 교만을 품위라 생각하며, 고집을 집념으로 위장하는 히스테리컬한 여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장 속물적인 이 여인을 완벽한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모시킬 꿈에 젖어 있는 미쉬킨과 대비시키므로 인간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 1869년에 ‘백치’가 발표되자 많은 비평가들은 인간의 속물성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차 없는 고발에서 그의 냉혹함을 읽어야 했다. “속물적인 인간이 가장 싫다”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심경을 밝혔던 도스토예프스키는 ‘까라마죠프가의 형제들’에서, ‘죄와 벌’에서 섬뜩할 만큼 집요하게 인간의 속물적 근성을 파헤쳤다.

▨… 앞의 신학대학 강의실에서 신학생들은 그 교수와 함께 그 시대의 속물적 인간상을 정리했었다.
1. 어떤 경우에라도 자기 몫은 챙기려든다. 2. 사랑을 말하면서도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은 결단코 용서하지 않는다. 3. 정의를 말하면서도 권력자들에게 한번도 ‘아니오’를 말하지 않는다. 4. 신앙인이라면서도 십자가는 한 번도 진적이 없다. 인간의 속물적 근성은 끝이 없었다. 한 시간 내내 들춰내도 바닥이 드러나지를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속물적 근성에는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총회는 내년 5월인데 교단 임원이 되려는 사람은 벌써 등록해야 한다는 공고가 나왔다. 아무리 속물시대라 하더라도 교단발전 운운하며 명예와 실속만 챙기려고 어느 교단처럼 쌈박질만 하는 속물이 등록하지는 않으리라고 믿도록 하자. 우리는 성결교단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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