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에서 종으로의 변화

중생은 성결보다 더 크고 놀라운 변화이다. 흔히 중생은 쉬운(?) 사건이지만, 성결은 아주 어려운 그래서 불가능하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이해가 아니라 오해이다.

중생은 사탄의 종(마귀의 새끼)이었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지옥에 주소를 가졌던 자가 천국에 새 주소를 가지는 것이다. 중생은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사건이다. 중생에서 성결은 새로 태어난 아기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것이다.

마귀의 새끼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은 종(種)에서 종(種)으로의 변화지만, 하나님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질적, 양적 변화이다. 사탄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가 어른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쉬운가? 당연히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 더 쉽다. 그러므로 성결보다 중생이 더 크고 놀라운 변화의 사건이다. 중생은 새로운 종(하나님의 자녀)으로 태어나는 사건이다.

지금은 파괴력이 많이 약해졌지만, 아직도 기독교의 창조론에 위해를 가하고 있는 이론이 다윈의 진화론이다. 교회에서 신앙으로 잘 자란 학생들이 중고등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신앙에 회의를 가지게 된다. 더군다나 선생님이 기독교를 은근히 비판하면서 진화론이야말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진리라고 가르치면, 아직 종합적인 지식과 판단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이 어릴 적부터 무비판적으로 가졌던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된다.

우리가 상식적인 질문 하나만 던져도 당장에 진화론의 문제점이 들어나게 된다.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의 종 안에서는 진화든 퇴화든 변화가 있으나, 다른 종으로의 진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명체로부터 인간을 정점으로 하는 고등생명체까지 진화하였다면, 이는 분명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진화인데, 지금까지 그런 진화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아주 옛날에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이 왜, 언제 중단되었는지를 진화론은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는 새로운 종으로서의 생명체의 출현(진화)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진화론은 한 생명체 안에서의 변화(적응)를 설명할 뿐, 각각의 생명체의 출현에는 답을 주지 못한다. 성경이 그 해답을 주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중생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사역이다. 자신의 자녀가 사탄의 종으로 (종에서 다른 종으로) 변질된 것을 다시 자신의 자녀로 (종에서 다른 종으로) 태어나게 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성서는 이 사역을 중생, 신생, 다시 남, 새로운 창조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연법칙에는 이러한 탄생은 불가능하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기적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재창조의 사역이다.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기뻐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새로운 창조(중생)를 하시고서 기뻐하신다. 천군과 천사들도 하나님과 함께 기뻐한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태어나야 자녀가 되고, 자녀들이(백성들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천군 천사들이 기뻐할 때, 땅에서도 함께 기뻐하는 존재가 있으니, 곧 목회자이다. 목회의 기쁨과 위로가 중생 곧 한 생명의 탄생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생에서 산파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목회자이다. 죄인-못난 인간, 더러운 인간, 죽은 인간-을 다시 살리고 변화시키기 위하여(중생)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면서 애쓰고 기다린 보람을 드디어 보게 될 때, 목회자는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신자들이 목회자에게 주는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가장 큰 선물이 중생의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필자의 짧은 목회경험에서도 이것보다 더 큰 기쁨과 보람은 없었다. 모든 목회자가 말씀을 증거할 때마다 이런 기쁨과 보람을 체험하고, 모든 신자들은 이런 감격을 목회자에게 줄 수 있다면, 성결교회는 부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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