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를 이어온 행복한 교회사랑
증조부 장경한 장로 등 신앙 모범
교회 일꾼으로 중추적 역할 감당해

증조부 장경한 장로, 조부 장민홍 장로, 아버지 장정래 장로의 헌신은 90년을 이어온 삼천포교회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제는 장재현 장로가 그 자랑스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다.
“4대째 믿음의 대를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게 하나님의 큰 은혜죠. 4대가 모두 장로라는 게 자랑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신앙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도 느낍니다”
삼천포에서 모나미가구마트를 운영하는 장재현 장로는 장인정신도 빛나는 성결인이다. 증조부 장경한 장로와 조부 장민홍 장로는 장롱을 만드는 기술자였으며 지금 경영하는 가구점도 조부와 아버지의 가업을 이은 것이다. 이러한 가업 덕분에 장재현 장로 가정은 교회 건축때 마다 재료구입을 맡거나 기술자로서 헌신 봉사해왔다.
증조부 장경한 장로는 삼천포교회 첫 신자로도 유명하다. 1920년 4월에 설립된 동양선교회 삼천포전도관(삼천포교회) 전도집회시, 술에 만취하여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던 장경한 장로는 전도대원의 인도로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취중에서도 전도대 강사가 외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란 성경말씀에 큰 위로와 소망을 얻어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다. 그날 장경한 장로는 집에 돌아와 섬기던 모든 우상과 물건들을 불태우고 긴 담뱃대를 부러뜨리며 집안 온 가족들에게 예수 믿을 것을 선언했다.
인동 장씨 33대손이며 6대 장자 장손이던 그의 선언은 큰 파장을 일으켜 친척들의 반대와 핍박을 받았으나 “이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한 예수를 얻었으니 이제는 모두 쓸데없다”며 가문의 제사와 귀중한 가보들을 동생에게 모두 주어버렸다. 그는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른 신앙의 지조를 보이기도 했다.
장경한 장로의 장남인 조부 장민홍 장로도 삼천포교회의 지주역할을 해왔다. 경제적인 어려움 중에도 교회의 살림을 우선시했으며 남을 대접하기 좋아하고 아무리 바빠도 구역예배 인도를 빠뜨리지 않았다. 1955년 장로로 장립한 장민홍 장로는 64년 별세할 때까지 삼천포교회 시무장로로, 교회 부설 성광유치원 이사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다했다.
지난해 별세한 고 장정래 장로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평생을 교회 일꾼으로 살았다. 72년 장립한 그는 삼천포교회가 설립한 야간 고등학교인 ‘성광상고(77년 폐쇄)’의 운영에 힘을 보태 이사와 교사로 참여했으며 교회 창립 70주년 기념 준비위원장, 서무부장, 유년주일학교 부장, 남전도회장, 회계 등을 맡는 등 그 누구보다 헌신된 모습을 보였다.
장재현 장로는 장정래 장로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했지만 지난해 돌아가실 때까지 항상 교회만을 생각하셨다며 남달랐던 부친의 교회 사랑을 회고했다.
장재현 장로에겐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두 아들이 있다. 이들이 훗날 장로가 되면 한 교회에서 5대째 장로 가정을 잇는 진기록이 만들어진다. 장재현 장로는 “아들들이 장로가 되면 좋겠지만 먼저 훌륭한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한다”며 선조들의 신앙유산을 잘 물려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증조부와 조부, 부친을 생각하면서 목회자를 잘 돕는 장로, 기도하는 장로, 말씀 읽는 장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삼천포교회가 더 행복한 교회가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