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1:1~13)
다윗과 솔로몬은 부자지간이면서도 그 삶의 양태가 현저하게 다릅니다. 다윗은 목동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맹수와 싸워야 했고 소년 시절에는 거인 골리앗과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왕이 되기까지 사울에게 쫓기면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겪고 왕이 된 후에도 주변 국가들과의 싸움으로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평화와 번영’이란 의미를 지닌 솔로몬이란 아들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지자 나단을 통해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란 뜻의 또 다른 이름 ‘여디디아’라는 이름도 주셨습니다. 이름에 걸맞게 솔로몬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고 그의 아버지 다윗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안정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솔로몬은 나단 선지자의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고 약관 20세라는 나이에 여러 형제 왕자들의 견제와 시기를 극복하고 기브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습니다(왕상 1:32~2:46),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의 아버지 다윗도 어찌하지 못했던 3대 국적, 아도니아, 압장군, 시모이를 처단합니다. 이 사실로 유추해 보건데 솔로몬은 지혜를 받기 전에 이미 왕으로서의 위엄과 통치력을 충분히 갖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여 전무후무한 지혜로운 왕이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자기의 궁을 지은데 이어 국고성, 병거성을 건축하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직후에는 지혜를 구한 자답게 해마다 세 번씩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는(왕상 9:25) 신실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지혜 외에도 부귀와 장수를 덤으로 선물로 받은 그는 에시손게벨이라는 항구에다 조선소를 만들어 배를 통한 무역도 활발하게 진행시킵니다.
그의 수입품 중에는 잔재주를 잘 부리는 원숭이도 있었다고 하니 종합해보면, 솔로몬은 이미 3000년 전에 지금 우리가 새로운 산업으로 일으키고 있는 조선업, 해외무역에 이어 디즈니랜드나 테마 파크에서 볼 수 있는 레저사업까지 손댄 사업의 대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의 형통함이 극에 달하자 오히려 영혼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가볍게 여기고 자연스럽게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여인과의 혼인을 금했는데(신 7:31) 이를 어겼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아야 하는데 이방 여인들이 섬기던 우상을 왕궁에서 그대로 섬기게 했고 자기도 따라서 우상 숭배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말을 많이 길러 마굿간을 두고 애굽에서 말을 사왔습니다.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두다 그 아들 르호보암 때에는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솔로몬의 변화를 보며 현재의 우리를 바라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소득 2만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은 거의 다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금년 여름휴가를 해외에서 보내려는 사람들이 예년보다 16% 가까이 증가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런가하면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는 젊은이도 많습니다. 신앙인의 타락은 솔로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솔로몬같이 안정되고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오늘의 크리스천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다윗은 고통가운데 나라를 세웠기에 그 삶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함을 지닐 수 있었는데 반해 솔로몬에게 부여된 안정과 풍요는 오히려 그의 족쇄가 됩니다. 솔로몬을 보며 우리는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그의 무한한 지혜도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나왔던 것임을, 하나님을 떠났을 때 솔로몬은 어리석은 지혜자가 되었음을, 바울의 역설적인 경구가 생각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