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그러니까 정확히 1988년 여름 봉산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을 때 교회학교 유, 초등부 여름 캠프에 지형은 목사님(성락교회)을 강사로 모셨는데 첫 강의시간에 ‘나(크리스찬)는 관계를 맺고 사는 존재’라는 전제아래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배관계(worship)이고 이웃과의 관계는, 대인(對人/사회)관계와 대물(大物/자연)관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인관계는 ‘동반자관계(partnership)’이고 대물관계는 ‘청지기 관계(stewardship)’라고 정리해 주더군요. 그때 지 목사님의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강의 능력을 지켜보면서 그의 장래를 크게 기대했는데 지금 교단의 중심 인물 중 한 분으로 우뚝 세워졌군요. 저는 그의 강의내용에 ‘나의 나 자신에 대한 관계’ 곧 ‘자기 동일성 문제(self-identity)’라는 항목을 더하여 강의하곤 했지요.

청(廳)지기란 말은 흔히 희랍어로 ‘oikonomos,-oi’로 표기합니다. 말 그대로 집(oikos)과 규범(법, nomos)의 합성어지요. 이때 ‘집’이란 개념은 단지 ‘건물로서의 집(built houses)’만이 아니라 ‘모종의 거처(any dwelling place)’라는 뜻이지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상어 속에 ‘청지기’란 말은 거의 사어(死語)가 된 듯하고요. 다만 성서언어로 남아있는 정도군요(벧전 4:10, 눅 16:1, 롬 16:23). 하지만 ‘oikonomos’의 개념이 영어권에서는 중요한 생활언어로 살아있지요. ‘Economy’라는 말은 정확히 ‘eco+nomy’의 합성어인데 이때 ‘eco’는 oiko(s)의 변형으로서 당연히 ‘집’이라는 뜻이고요. 희랍어 ‘oikonomos’가 고스란히 ‘economy’라는 개념으로 재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

이런 유형은 생태학을 ‘Ecology’로 표기하는 데서도 그 흔적이 남아있지요. 생태학은 말 그대로 ‘생태’로서의 자연, 환경인 우주를 하나이면서 전체인 ‘집’으로 읽어내는 학문이지요. 최근 상호 대립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여기던 경제학과 생태학을 보완적 관계로 보려는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콜로이코노미(ecoloeconomy)’라는 신개념이거든요. 영어권 언어 속에 ‘청지기’ 개념이 정확히 살아있고 이 말이 특히 경제와 관련된 소중한 전통으로 살아있다는 것(예컨대 economic, economical 등)은 그 말 속에 오늘 우리가 새겨도 좋을 문화적 전통이나 버려서는 안 될 정신이 담겨있다고 여겨도 좋을 것입니다. 원래 청지기(oikonomos,-oi)라는 개념 속에는 ‘청지기’라는 뜻만이 아니라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contraction, transaction)’의 뜻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청지기’의 원래적 의미, 그 아름다운 정신은 아무래도 개념 분석을 넘어 그 의미의 적용에서 더욱 분명해 질 듯 하군요. 청지기는 말 그대로 ‘한 집(가족)의 규범’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때 ‘집’을 ‘교회’라고 설정 해본다면 청지기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규범이 되는 사람이겠지요.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변증하고 있는데 이때 ‘맡은 자’는 곧 ‘청지기(oikonomous)’이지요(고전 4:1~2).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감독(딛 1:7)의 자격을 명시하고 있군요. 일찍이 휴정이 ‘야설'이라는 시(詩)에서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눈 덮힌 들판을 걸을 때/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오늘 내가 남기는 이 발자국은/후인들이 따를 이정표이니)”라고 노래했듯이 청지기는 한 집안의 선구적 봉사자(눅 12:42, 벧전 4:10)이겠지요.

성철은 세속나이 56세에 해인총림의 방장이었을 때 선방수행승들에게 자주 “사람 못된 것이 중 되고 중 못된 것이 선원수좌되고 수좌 못된 것이 도인되는기라”라고 호통쳤대지요.

제 후배 L목사도 언젠가 쓴 글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사 되게 하신 까닭이 알고 보니 “목사노릇이라도 해야 주일이라도 제대로 지킬 놈 같아서”라고 고백했더군요.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 때 매 주 한 번씩 모이는 지역 내 교역자 테니스모임에서 잠깐 쉬는 동안에 동기 Y목사와 저는 평소처럼 한 주간의 소회를 나누게 되었더랬지요.

먼저 제가 “언제부턴지 목사로서의 사명감을 놔 버린 것 같다”했더니 Y목사는 정색을 하며 “지금 내 고민도 바로 그것이라”면서 “최근 이 문제를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내가 깜짝 놀라면서 그 날부터 매일 아침 4시간씩 기도하기 시작했다”하더군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 외아들 학교 보내는 일까지 남편에게 맡겨두고. ‘oikonomos’로서의 목사이건 세상에서 가장 못났고 못된 놈으로서의 목사이건 주인이신 그분께서 나를 이 자리에 세우셨다는 의식만큼은 평생 내려놓지 말아야 할 듯하군요.
하긴 누구는 “핏속에서 푸른 혈죽(血竹)을 피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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