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환영회의 연설과 성결교회 전도인 탄생

이성봉 목사는 평양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서울로 가다가 기차 옆 칸에서 쩡쩡 울리는 전도 목소리를 듣고 찾아 왔다. 전도자가 30대 젊은 여자인 것을 안 이 목사가 먼저 놀랐다. “참, 대단한 여장부로다.” 이 목사가 그녀의 손목을 이끌고 자기 자리로 왔다. 뜻밖에 기차에서 존경하는 이성봉 목사를 만난 그녀는 놀라며 황송했다. 이 목사가 그녀에게 몇 마디 묻고 이름을 물은 후, “우리 교단에 당신 같은 전도자가 필요하다. 내년 4월 중순에 서울 아현성결교회를 찾아오라”고 하며 명함을 주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고향 사람의 집에 머물며 신학교를 수소문했다. 그러다 독립운동가 김구 주석의 귀국환영회가 정동감리교회에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에 찾아갔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들어가지 못했다. 그녀는 “나는 북한여성 대표로 김구 주석을 환영하러 왔수다. 왜 못 들어가게 합네까?”하고 문지기에게 호통을 쳤고 환영회장에 들어가게 됐다.

환영회는 먼저 이승만 박사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얘기를 한 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김구 선생을 환영한다는 환영사를 했다. 답사에 나선 김구 선생이 얘기 끝에 “사실은 경찰서 10개를 짓는 것보다 교회를 하나 짓는 것이 나라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물러나자, 감격한 김만효가 자리에서 손을 들고 일어나 소리쳤다. “나, 이북여성 대표로 왔수다, 축사 한마디 합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자가 순서에 없다며 거절했다.

몇 사람의 순서가 지난 후, 강단 위에 앉은 이승만 박사가 일어나 “아까 이북여성 대표로 오신 분, 올라와서 한마디 하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담대하게 강단에 올라갔다. 그녀는 10분 동안 이런 요지로 말했다. 즉 “미국과 중국에서 우리 독립운동을 크게 이끄신 이승만 박사님과 김구 주석님 두 분의 귀국으로 이제 우리나라는 반석 위에 세워질 것이다. 두 분이 힘을 합해 이 나라를 하나님 믿는 나라로 만들어 달라. 우리 이북여성들은 열심히 기도할 것이다.” 그의 연설에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일생 처음으로 존경하는 이승만 박사와 김구 주석 등 훌륭한 어른들과 악수했다.

이듬해 봄에, 김만효는 삼각지에 장로교회 강신명 목사가 교장으로 있는 ‘연경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신학공부가 너무 어렵고 딱딱해서 재미가 없었다. 조직신학 시간이면 골치가 아팠다. 또 성경공부도 개론 공부가 별로였다. 신학교에 오면 이성봉 목사님처럼 그렇게 성경을 재미있게 가르쳐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자 문득 이성봉 목사님이 찾아오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렇지. 4월 중순이라고 했어. 그런데 무슨 교회더라?” 한참을 생각한 그는 마침내 아현성결교회를 생각해냈다. 그래서 그녀는 한 달을 기다려 어느 날 오후에 아현성결교회를 찾아갔다. 계단을 한참동안 올라가자 사람들이 많았다. 성결교회 총회기간이었다. 그녀는 아무나 붙잡고 이성봉 목사님을 찾았다. 사람들이 일러준 대로 더 올라가자, 5층 붉은 벽돌 웅장한 신학교 건물이 나타났다.

이성봉 목사님을 만나, 주신 명함을 보이며 김만효라고 했다. 이 목사님이 그를 알아본 후, 이명직 목사와 최석모 목사 등 몇 사람과 상의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른들 앞에서 간단히 시취를 받았다. 그녀가 확신 있게 대답하자, 어른들이 “됐어. 합격이야”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특별 케이스로 성결교회 전도인으로 임명되었다.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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