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되거나, 믿는 자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분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마귀의 역사로 밖에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는 서로 연합하고 하나 되게 하는 것이지만 마귀의 역사는 갈라지고 분열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장 10~17절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고린도교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교회의 내부 분쟁과 분열에 대해서 지적하고 권면의 말씀을 하고 있다. 여기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오늘 나의 문제일 수가 있고, 우리 교회의 문제일수도 있고, 교단의 문제일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분쟁이 왜 일어나고 분열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지 모색해 보려 한다.

바울에게까지 들린 분쟁 소식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장본인이다. 그 교회가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대단히 마음이 무겁고 아팠을 것이다.

‘분쟁’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스키스마타’이다. 이는 ‘찢어진 상태, 오이 찢어져 너덜너덜해진 상태’를 말한다. 찢어지고 해진 옷은 보기에도 흉할 뿐 아니라 부끄럽게 속살을 드러내게 된다.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싸움을 하고 분열될 때 교인들의 신앙에 막대한 타격을 줄 뿐 아니라 교회성장에도 저해가 되며 어떤 사명도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무가치한 교회로 전락하고 만다. 바울에게 들린 분쟁소식처럼 우리도 한국교회, 우리사회, 세계에 분쟁소식을 전할것인지 묻고싶다.

분쟁의 원인은?
고린도교회가 분쟁에 빠지게 된 원인은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사람 중심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는 내용을 볼 때 고린도교회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고 목회자(사도)를 너무 추앙하고 신격화했기 때문이다.

한 분 예수님을 여러 갈래로 쪼개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바울은 목회자에 대한 인식오류를 강하게 꼬집는다. 그는 고린도교회를 개척하고 신자들을 헌신적으로 가르쳤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구원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고린도교회 신자들은 바울을 예수님과 동등시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님과 동등시한 것이 잘못인 것처럼 목회자를 신격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란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높아지고 주인행세 하기 쉽다. 또 목회자는 모두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역하는 자다. 아무리 훌륭하고 능력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높이듯 높여서는 안된다. 목사가 주님처럼 추앙받는다면 그 목사는 영광을 빼앗는 것이 된다.

‘하나되라’는 바울의 권면
분쟁이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바울은 “너희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말한다. 어떤 일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자기 주장을 피력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라고 할 때 잠잠해 질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동안 교회는 너무나 심한 분쟁과 분열상을 보여 왔고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교회의 영적 권위가 이처럼 실추된 적이 없다. 영적 권위를 잃어버리면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며 맛 잃은 소금이 길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히듯 밟힐 수밖에 없다. 교회의 영적인 권위를 회복시키고 높이기 위해 우리 성결교회와 성결 목회자, 성결인 모두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하나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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