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5:1~24)
몇 년 전에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쉬고 있는데 집에서 급히 전화를 해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집에 보석 같은 딸 아이가 놀러가서 날이 저물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마음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고속도로에서 과속을 하면서 달려간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보석을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보석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곁을 떠났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보석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보석을 찾고 계십니다.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으로 아니 몇 천배 더한 간절함으로 하나님은 잃어버린 사람 보석을 찾고 계십니다.
본문, 눅 15장은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은 잃어버린 사람을 얼마나 하나님께 귀하게 보시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목자는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습니다. 두 번째 비유에서 여자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습니다. 세 번째 비유에서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들은 별로 가치도 없고 때로는 하나님께 도전하고 싫어하는 일을 하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석으로 여기는 모든 사람의 영혼의 가치를 볼 수 있는 영적 눈이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울타리를 쳐놓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사랑하고 교제하였으며 바리새인처럼 영적 우월감에 빠져 불신자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죄를 범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하였습니다. 신앙의 연조가 많을수록 세상의 사람과 소통의 끈이 단절되어 마치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해서는 하나님의 보석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목자가, 여자가, 아버지가 그렇게 하였던 것처럼 바로 우리 예수님이 직접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잃어버린 자를 찾아야 합니다. 동창회, 향우회, 반상회나 각종 모임에 가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이 임하기까지 기다리며 인내해야 합니다.
본문의 세 가지 비유에서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는 일을 위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그리스도인을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의 말로는 너무나 비참함을 알기에 찾고 계십니다. 그것은 찢기어죽고 가치를 상실하고 굶주려 죽기에 잃은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세상을 향해 잃은 자를 찾아야 합니다.
본문의 세 가지 비유에서 찾은 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목자가 양을 찾았을 때와 여자가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 그리고 집나간 아들이 돌아왔을 때 기뻐하였으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본문 1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말합니다. 잃어버림을 당한 자가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오면 천국에서도 잔치가 열립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잃어버린 보석 찾기에 게을리 한 우리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보석을 찾는 사명자임을 명심하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버지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보석을 찾는 성도들이 외치는 소리에 성령께서 이 땅을 진동하게 하십시다. 그러면 반드시 하늘나라 생명의 푸른 계절이 이루어져 천국 잔치에 주님과 기쁨을 함께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