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최고 신학자로 평가받는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인들은 한 손에는 성경을, 한손에는 신문을 들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앙과 사회를 균형 있게 바라보라는 권고다. 복음주의자에게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세상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래서 빌리 그레이엄은 ‘성경을 한 손에, 조간신문을 한손에 놓고 비교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설교자에게 칼 바르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선포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매일 성서를 한 손에 쥐고 살고, 하나님의 뜻을 올곧게 전하기 위해 다른 한 손에 매일의 신문을 들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성서 연구 없는 설교가 넘쳐나고, 삶의 변화 없는 신자를 양산하는 한국교회 모습은 뭔가? 혹시 목회자들의 양 손에 다른 것(?)이 쥐어진 때문은 아닐까.

▨… 목회자의 한 손에 성경이 있음은 분명하다. 성서주석서가 넘쳐나고 설교를 돕는 자료들은 서재를 장식한다.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목사의 설교가 성서 안에 있음은 믿음의 영역이다. 문제는 신문이다. 신문이 넘쳐나 한손에 들기 힘들다. 신문을 들면 성서에 먼지가 쌓일 판이다. 일간지, 지역신문, 교단신문, 교계신문, 인터넷 신문, 그리고 기타 등등. 옛날이 차라리 그립다.

▨… 신문도 다 같은 신문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 심화로 객관적 사건을 보는 시각과 입장이 천양지차다. 때론 객관적 사실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무슨 신문을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입장을 규정하는 세상이 됐다. 절대적 표준인 성서도 일정한 해석 차이가 상존하니 별일이야 있겠는가만 세상에 민감해야 할 성결교회 목회자에게 들려야 할 신문이 무엇인지 죽은 바르트를 깨워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한국성결신문이 나온 지 20년됐다. 겉모습은 월간에서 주간으로, 4면에서 12면으로 발전했다. ‘그것도 신문이냐’고 혹평했던 이들도 성결신문 위상을 부인하진 않는다. 부족함과 한계를 질책하고 날선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다. 오늘 우리는 20살 청년이 된 성결신문에 다시 묻는다. 오늘 ‘성서’와 함께 성결인의 손에 들릴 수 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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