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심각한 도전들
'인간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얼핏 내가 누구이며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 이웃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 그렇게 어렵거나 복잡한 내용을 담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또 그 변화 역시 몇몇 학자들 간의 세계관의 차이로, 우리 일상생활에는 하등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지나치게 천진한(naive) 것이다.
‘하나님 형상’으로서 인간이해에 대한 도전
6.25전쟁이나 세계대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을 되돌아 볼 때 그 전쟁의 참상에 몸서리치게 되지만 인간을 잘못 이해하면 그 참상은 과거 어느 전쟁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와 폐해를 낳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벽두에 선 우리에게 ‘인간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올바른 통로를 찾는 것보다 더 진지하고 핵심적인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확실한 가치관에 서지 못하면 우리 후손들은 SF 공상 과학적 현실 속의 제물로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것 같이 오늘날 신학적 인간학은 심대한 도전 앞에 서 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인간이 하나님과 유사성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유사성은 두 가지를 내포한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을 가까이 두시고 그 인간을 자기와 비슷한 존재로 만드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며, 둘째 그에 따라서 인간의 본질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답하는 사건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간이해는 거의 모든 종교적 질문이나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인간 자신에 대한 다양한 토론들, 예를 들면 생리학, 심리학, 행동심리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등이 요구하는 과제들과 토론 논지들은 인간을 자연세계 안에서의 고등동물의 존재양식과 비교 속에서 이해하려 노력할 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은 철저히 배제한다. 또 이러한 경향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더 노골화되고 더 철저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과학발전과 논쟁의 심화
이러한 전통적인 신학적 인간이해에 대한 반발은 1940년대 이후 급속하게 발전하는 분자생물학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 분자 생물학은 생명현상에 필수적인 단백질, 핵산 및 효소 등과 같은 거대분자에 대해 연구하면서 그것은 3차원적 구조를 알아내고 그를 통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유전현상을 분자의 수준에서 규명해 주었다. 과학발전은 유전자 지도 작성을 가능케 했고 유전자와 생물체의 특정 형질이 연관 있음을 증명했으며 더 나아가 DNA(RNA) 재조합 기술을 통해서 유전자를 분리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새로운 과학 발전은 리처드 도킨스에 의하여 무신론의 무기로 이용된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 분자생물학의 정신을 다윈의 진화론과 연결시켜 다윈의 진화와 자연선택론을 기본으로 하면서 이 진화의 기본 단위가 유기체인 생물이 아니라 불멸적 존재인 유전자들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인간들은 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외계의 기계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한다. 사실 이러한 과도한 주장이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는 다는 것은 현대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보여준다.
도킨스와 유사한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는 골드가 완전히 일치가 아니라 차이를 보이고 있어 그들 가운데 해석학적 여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을 유전자의 기계쯤으로 보는 인간이해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인지 아닌지의 논쟁자체가 이미 우리 신학적 인간이해와는 상관이 없고 생경해진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새로운 논쟁들은 우리가 만나고 있는 새로운 전선(戰線)이다. 우리는 지금 악전고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