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맞아 그리운 선생님께
권정생 선생님! 언제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미적거리다가 떠난 자리에 겨우내 움츠렸던 나무들이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산수유도 벚꽃도 앵두나무도 예쁜 자태를 마음껏 뽐내며 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발길이 뜸한 우리 교회 뒤쪽 자갈밭에서도 어느새 샛노란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가꾸지도 돌봐주지도 않았는데 자갈 틈사이로 겨우 겨우 비집고 나온 목도 가누지도 못한 채 핀 키 작은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이 너무 대견합니다. 미안해하듯 외로 고개 숙인 겸손한 꽃 민들레는 꼭 선생님을 생각나게 하는 꽃입니다.
경북 안동의 선생님 댁을 찾아간 날, 작은 빌뱅이 언덕에 20년 전처럼 여전히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작은 오두막집은 이제 주인이 떠나고 없는 빈집이었지만 원고지를 손에든 초등학생들이 선생님들의 인솔 하에 옹기종기 햇살이 따뜻한 마당 한 켠에 모여 있는 모습이 얼마나 정겨웠는지 모릅니다.
살아계실 때 보다 떠나신 후 더 큰 울림으로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분. 언제라도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된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그 토담집은 세상 누구라도 따뜻하게 품는 마음의 고향 같았습니다.
오직 선생님 동화를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도 당당하게 무단 방문하던 이 무례한 독자의 만행(?)을 책망치 않으셨지만 속으론 난감해하셨지요.
그때는 단지 눈이 번쩍 뜨이는 동화를 만났다는 그 감격 때문에 선생님의 사정을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철없었음을 이제야 반성해도 용서해주실 선생님은 떠나고 안계시네요. 세상을 부디 아름답게 살라고, 영원히 행복하라고 빌어주시면서 개울가에서 찾으셨다고 보내주셨던 네 잎 크로버는 예쁘게 코팅되어 아직도 그때처럼 보관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역의 아픔을 가끔 전화로 넋두리 하면 아무리 어둠이 짙어도 빛이 들어가면 어둠을 밝힌다고 작은 빛이 될 것을 말씀해 주시던 선생님. 선생님은 그 산골짝에서 병들고 가난하게 혼자 사셨지만 세상을 비추는 빛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맑고 순수한 선생님을 혼자만 차지하고 싶으셔서 그렇게 산골에 꼭꼭 감춰두셨던 것 같습니다.
병과 평생 싸우면서도 못나고 서러운 사람들을 위해 모든 걸 주고 또 주고 싶어 하시던 분.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도 걱정하셨던 지구촌의 가난하고 불쌍한 어린것들은 평생 가난하게 사시면서 선생님이 그들 위해 남겨주신 것으로 먹을 것 먹고 입을 것 입으면서 이제 배고프지도 서럽지도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많은 유산과 해마다 인세수입이 있었음에도 자신을 위해서는 거의 쓰시지 않고 초라하게 사시면서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내어주고 가신 아동문학계의 거목이셨던 선생님, 결국 우리의 참 스승은 예수님 밖에 없지만 내 인생의 길목에서 만난 선생님은 살아 계셨을 때도 돌아가신 후에도 얼마나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셨는지 모릅니다.
온갖 거짓과 위선과 술수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입으로만 아닌 온몸으로 예수 사랑을 실천하신 내 마음의 영원한 스승이신 동화 작가 권정생 선생님!
하나님도 가난하시고 예수님도 가난하신데 왜 사람들은 끝도 없이 가지려고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가슴 아파 하셨던 선생님. 아무리 칠흑같은 캄캄한 어두움도 빛이 들어가면 물러가겠지요. 정말 어두움이 쫓겨 가겠지요.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