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3:13~15)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나가서 전도와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두 가지 일 중에서 우리는 두번째에 비중을 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사탄의 권세를 무찌르는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백 번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일어나며,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일입니다. 이것이 제자로서 더 본질적이고 우선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정말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행동을 보며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시고 무엇을 기뻐하시며,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배웠던 것입니다. 만약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없었다면 그들은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있는 일에 성공했기 때문에 또 주님을 떠나 이 세상에 나가서도 제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먼저 주님과 함께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주님과 함께 있는 일을 더 잘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예배하는 시간,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는 시간, 그리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간을 통하여 주님과 사귐을 가지며 주님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도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언니 마르다는 주님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문제가 많은 일이었습니다. 마르다는 생색을 내고, 짜증을 내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채로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렇게 속상한 마음으로 하려면 오히려 한 가지만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그 음식을 잡수셨겠지만 그렇게 즐거운 식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때 부엌에서 일은 하지 못했지만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발 앞에서 겸손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 잘 듣고 배웠습니다. 그녀는 주님과 함께 있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주님과 함께 있는 일에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그 후에 귀한 향유를 통째로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음으로써 예수님을 위하여 가장 큰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함께 전하여 질 것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우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명하신 다른 일도 잘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일에 실패한 제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일에 실패한 목사가 교회를 허약하게 만듭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일에 실패한 장로가 교회를 무질서하게 만듭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일에 실패한 권사, 집사가 교회를 타락시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혼란스럽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주님과 함께 있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는 일에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 나가서도 주님이 명하신 제자의 사명을 바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