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교회에서의 헌신적인 사역

김하석 목사가 안성교회를 시무할 당시 전도열이 대단했다. 안성교회 신자들은 옥산리, 현수리, 구토리, 동문 4개 촌락에서 집회소를 열고 남여신자 40명이 2대로 나누어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밤에 찾아가 주의 복음을 전했는데 100여명이 모여 복음을 경청했다.

김 목사는 신식교육기관으로 알려진 협동학교 교사로 봉직했던 교육경력의 경륜과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의 인격을 갖춘 선각자였다. 그는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목회자로서 구령에 대한 열정을 갖고 전도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한편 종교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여 주일학교를 크게 진흥시켰다.

1929년 5월 둘째 주일은 안성교회 유년주일학교 진흥주일로 지켜 교사와 학생들이 심령부흥을 이뤘다. 유년주일학교 진흥주일 행사는 교사들의 사명감을 크게 고취시키는 한편 학생들에게도 전도의 열의를 불러 일으켰다. 이로 인해 온 교회가 주일학교 부흥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안성지역 내에 믿지 않는 유년을 대상으로 전도운동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주일학교 진흥운동은 전국의 주일학교부흥을 위한 기도운동으로 확대하여 더욱 은혜가 충만해졌다.

김 목사의 주일학교 진흥운동은 안성교회 부흥과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주일학교 진흥운동행사의 하나로 주일학생전체와 일부장년들이 녹음방초 우거진 비봉산 기슭, 한적하고 수려한 곳에서 산상예배를 드렸는데 성도들이 새로운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성도들이 산상예배에서 은혜 받은 감동은 새로운 헌신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퇴락한 성전수리를 위해 특별헌금을 시작했다. 생활난에 빠진 가난한 신자들까지 자원해서 기꺼이 바친 헌금이 199원이라는 당시로서는 거액의 헌금이 나왔다. 그 헌금으로 예배당을 새로 수리하고 교회당 자리를 새로 깔았다. 그리고 장년과 유년의 성경분반공부에 복잡함을 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휘장도 만들어 학습의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모든 신자들이 신앙의 열정이 일어나 개인전도와 기도에 열심을 내었다.

모든 성도들이 새벽기도회에 총력을 기울여 회개와 중생 그리고 성결의 은혜를 받았다. 그 중 김충덕 여인은 죄 가운데서 구원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뜻으로 40원을 헌금하여 예배당 울타리공사를 하는 등 교회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 그리고 안성교회는 해마다 지교회를 하나씩 설립하는 운동을 적극 펼쳤다. 이 지교회 설립운동은 안성지방에 있는 각 교회로 파급되어 여러 곳에 성결교회가 세워졌고 안성교회의 지교회 설립 운동은 성결교회 확장의 계기가 되었다.

1929년 1월 활천에 게재된 성탄과 신년축하광고에 안성교회가 실렸는데 김하석 목사 등 남자 직원이 7명, 여자직원이 13명으로 명시돼 있다. 당시 모교회인 무교정교회(현 중앙교회)의 직원이 6인임을 보아 안성교회의 교세를 가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안성시장통의 주단포목 태양상점 이인성(李隣盛)과 명원양화점 명원근(明元根) 등 안성교회의 신자의 축하광고가 게재되어 있어 경기남부지방의 모교회로서 모범적으로 총회 사업에 협력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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