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 지구촌에 재난과 시련이 계속되어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도처에서 인류들이 아우성이다. 새해 벽두에 중앙아메리카 아이티에서의 지진으로 3백만의 사상자가 발생하더니, 2월에는 남미 칠레에서 강진으로 해안도시 하나가 송두리 채 파묻힌 참사가 발생했다.
또 3월에는 한국의 ‘천안호’가 경계임무 중 어뢰로 추정되는 외부충격으로 46명의 해군용사들이 졸지에 희생됐고, 4월에는 태국의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정부군의 발포로 방콕의 거리가 유혈이 난자했으며, 중앙아시아 최빈국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총격으로 1백명에 가까운 비슈케크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지난주에는 중국 칭하이 성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도시 전체가 폐허되어 수천명이 죽었고, 유럽 폴란드의 지도자들이 90년 전에 발생한 ‘카틴 숲 학살사건’을 추념하기 위해 러시아로 가던 중 항공기의 추락으로 카친스키 대통령과 군 수뇌부 인사들 97명이 몰사했다.
또 이번 주에는 아이슬란드 화산의 폭발로 검은 화산재가 유럽대륙을 덮고 아시아와 태평양을 건너 세계를 덮으려 하고 있어, 국제적 항공마비와 대란으로 각국의 항공사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수출국들의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언제 그칠지 울상이다.
금년 들어 숨을 돌릴 사이 없이 연속적인 대재난과 참상이 모두 8건으로, 1달에 2건의 꼴이다. 이를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돌발적이고 지구 파멸적인 사건이어서 인류는 경각심과 함께 이에 대한 대책부심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당사국 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엿볼 수 있다. 하나는 자연적인 재난이다. 아이티, 칠레, 중국, 아이슬란드의 지진과 화산폭발이 해당된다. 자연적 재난은 인간의 불가항력적 사건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환경론자의 지적대로 지구의 온난화를 부추긴 인류의 공동적 책임에 대한 신(神)의 벌이 아닌지, 깊이 반성할 과제이다.
또 하나는 인간의 과욕으로 파생된 인재(人災)이다. 태국이나 키르기스스탄의 반정부시위, 폴란드 항공기 추락과 한국의 천안함 침몰이 해당된다. 반정부시위는 정권욕을 탈취하려는 세(勢)의 싸움이고, 폴란드 항공기의 추락은 기장의 허영심이 빚은 항공규칙을 어긴 무리한 착륙시도였으며, 한국의 천안함 사건은 새해에서 패전한 복수로 저지른 북한의 도발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런 연속적인 재난을 통해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는 이런 재난이 계속되는 난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치, 경제, 군사지도자 97명을 몽땅 잃은 폴란드가 슬픔을 억누르고 온 국민이 일치단결하고 협력하여 국난을 극복해 가는 소식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대통령을 중심으로 여야와 온 국민이 사리사욕, 당리당략을 버리고 국가보위와 발전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종말론적 의식’이다. 장차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사는 성도들은 어떤 죽음이 와도 두려움과 후회가 없는 굳센 신앙으로 무장하여, 이 땅에서 사랑과 봉사의 삶을 꾸준하게 펼치면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