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퇴역 군장성 라마르 베스트가 만나는 군인들에게 즐겨하는 질문이 있었다. “당신은 왜 군인이 되었는가?”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질문에 대해 “나라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해서”라든지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비전 있는 대답은 좀처럼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들은 것은 “다른 직업을 찾지 못해서” 또는 어깨를 으쓱이며 “보내졌으므로 일하고 있다”는 대답뿐이었다.

▨… 성경은 “계시가 없으면 백성이 제 멋대로 날뛰게 된다(쉬운 성경)”고 했다. 비전은 헌신과 용기와 통찰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다. 그래서 비전을 가진 사람은 수년 후의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 알고, 일상의 습관에서 빠져 나와 매일 매일 새로운 흥분과 열정으로 깨어 일하게 된다. 흔히 장래성 있는 사람을 ‘비전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비전은 꿈이 아니다. 비전은 바라보는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고 그에 상응하는 계획을 가지고 매일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게 하여 결국 열매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꿈은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꿈은 행동없이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천력 없는 꿈은 망상에 불과하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아메리칸 비전’이라고는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비전은 야망도 아니다. 물론 야망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행동을 수반하고, 오늘에 안주하지 않으며 새로운 목표를 찾아간다. 그래서 언뜻 비전과 야망은 비슷해 보이지만 생명에 관한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명확히 구분된다. 야망은 사과 한 개를 바라보지만 비전은 사과 안에 있는 씨를 바라보고, 나아가 그 씨 속에 들어있는 수없이 많은 열매를 바라보는 것이다. 

▨…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야망의 수단이 될 때 사이비나 이단들이 나왔다. 오늘 우리들과, 우리 교회와 우리 교단은 비전이 있는가. 새로운 인식과 생명을 창출해 내는 출구가 과연 존재하는가. 혹 품고 있는 그것이 꿈이나 야망은 아닌가. 우리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불확실한 가운데 막연히 날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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