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말씀묵상<계 10:8~11>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말씀을 먹는 사람어느 일요일 아침, 자신이 갇혀 있던 밧모섬에서 예배를 드리는 도중에 성 요한은 한쪽 발은 바다를, 다른 한쪽 발은 대륙을 디딘 채 손에 펼쳐진 두루마리 책을 들고 설교하는 거대한 천사를 보았다(계10:1~2):그의 설교는 우레와 함께 큰 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누구라도 결코 졸 수 없는 설교였다(계10:3). 

요한은 자신이 듣고 있는 말을 기록하려고 하다가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비밀로 하고 기록하지 말라!(계10:4)’ ‘네가 가서 두루 마리를 가지라!’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8) 천사에게로 가서 ‘그 두루마리를 달라’고 말했다. 성 요한은 천사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계10:9). 

펼쳐진 두루마리 책을 갖다 먹어 버리라!

그 강인한 천사의 명령은 식탁으로 와서 ‘이 책을 먹으라’는 강력한 초대이기도 하다. 책을 먹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조직에 동화시키는 것이다. 독자는 자신이 읽는 그것이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건강하다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신경과 근육에 흡수되어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요한은 두루마리 책을 먹은 최초의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보다 600년 전에 에스겔도 두루마리 책을 먹으라는 명령을 받았다(겔2:8). 에스겔은 입을 벌려 하나님이 먹이시는 두루마리를 ‘받아먹었다’(겔3:2). 에스겔과 동시대인이었던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계시를 ‘얻어먹었다’(렘15:16).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먹이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 요한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갖다 먹고’, 선지자 에스겔처럼 ‘입을 벌려 받아먹고’,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얻어먹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있나? 설교와 가르침을 위해 성경을 읽거나 연구할 수 있지만 결코 먹지 않을 수 있다.

말씀을 먹는 삶, 말씀을 흡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을 것이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물을 흡수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흡수해야 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늘 풍성하고 늘 푸를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다(시1:3). 이것은 약속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기독교 영성에서 일차적인 텍스트이다. 기독교 영성은 온전히 성경 텍스트에 뿌리박고 있으며 성경 텍스트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의 개인적인 영성 생활은 자신이 좋아하는 텍스트들과 개인적인 상황의 임의적 조합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 텍스트와 일치하는 성령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우리 안에
심겨진 계시된 말씀을 따라서 성장한다

아,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양식이다. 우리 영혼의 음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말씀을 먹어야 된다. 우리 영혼이 이처럼 연약한 이유는 성경 말씀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 성경말씀을 읽고 연구는 하였어도 그 먹은 것이 너무나 부족해서 우리 영혼이 이처럼 힘이 없고, 활력이 없는 것이다.

아, 그렇다! 하나님이 먹이실 때 입을 크게 벌리고 통째로 삼켜야 한다. 우리가 골라 내지 말고, 가려 내지 말고 주신 그대로, 먹이시는 그대로 받아먹어야 한다. 우리 영혼이 이처럼 병든 이유는 내 입맛대로 골라 먹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입을 크게 벌립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먹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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