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봉 목사 부흥회 통해 은혜 받아 헌신

1940년 1월 농한기에 그가 다니던 단천읍 장로교회에서 심령부흥회를 했다. 심신경은 그동안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여 세례를 받고 세례교인이 되었다. 부흥회는 매년 한번 하는 중요한 행사로, 부흥회를 통해 신자들은 신앙이 성장하고 더욱 충성했다. 이 때 오신 부흥강사가 성결교회의 이성봉 목사였다. 그는 직장의 교대시간의 비번에 맞춰 부흥성회에 참석했다.

처음 참석한 성회에서 그는 큰 은혜를 받았다. 몇 차례의 부흥회에 참석했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먼저 부흥강사의 체구와 위엄 있는 얼굴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영감이 깃든 굵직한 바리톤 음성은 신비스러워 마치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은혜를 받은 것은 목사님의 메시지였다. 탕자의 이야기를 설교하면서 “회개하라!”고 외치신 말씀에 신자들은 엎드려졌고, 마치 바늘로 심장을 찌른 듯 그의 마음이 갑자기 아파오면서 그동안 지은 죄들을 토하기 시작했다. 신자들도 ‘주여! 주여!“ 외치면서 회개했다. 심신경도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회개했다.

강사는 계속 외쳤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중생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니고, 집사 장로가 됐어도 중생하지 않으면 천국백성이 아닙니다.” 부흥강사의 쩌렁쩌렁한 음성은 사람들의 마음을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이런 설교는 심신경이 그동안 장로교회에 오랫동안 다녔어도 처음 들어 본 말씀이었다. 심신경은 성회가 너무 좋아 직장에 결근계를 낸 후, 시간마다 빠지지 않고 계속 참석해서 큰 은혜를 받았다. 회개하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고, 또 알지 못할 기쁨이 마음속에서 물결쳤다. 또 기도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폐결핵이 낫는 기적을 체험했다.

“아, 나도 저 부흥목사님처럼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집회가 끝나는 날, 부흥사 이성봉 목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심신경의 중생의 체험과 은혜의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듣고 이성봉 목사가 그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형제여, 하나님께서 그대를 종으로 부르십니다. 곧 순종하세요!”, “예, 순종하겠습니다!” 그러자 이성봉 목사가 즉시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주었다. 그리고 직접 추천서를 써 주고, 4월에 서울 아현동에 있는 ‘경성신학교’에 가서 입학시험을 치르고 신학생이 되어 주의 종이 되라면서, 십자가를 잘 지라고 격려했다.

그는 이튿날 직장에 가서 사직서를 냈다. 그는 신학생이 되기 위한 준비로 새벽기도회와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자진해서 주일학교에 가서 교사로 가르쳤다. 그의 헌신 결심을 안 담임목사가 장로교신학교인 ‘평양신학교’에 가라고 권면했지만, 그는 장로교회보다 이성봉 목사가 소속된 성결교회의 ‘경성신학교’가 더 좋을 것 같아서 거절했다.

마침내 그는 1940년 4월에 서울로 가서 경성신학교를 찾아가 이성봉 목사의 추천서를 낸 후, 입학시험을 치루고 합격해서 신학생이 되었다. 그는 신의주에서 온 정진경 신학생과 한 반, 기숙사 한 방을 같이 쓰면서 친했다. 나이는 심신경이 더 많았지만, 정진경은 안타깝게 폐병이 깊어 휴학을 했다. 그 때 신학생들은 낮에는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밤에는 어울려 북을 메고 나가 노방전도를 했다. 그는 이 때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소리 높여 복음을 외쳤고, 전도에 담력과 자신감을 얻어 교역자의 자질형성에 도움이 됐다. <계속>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