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미한 목숨이요 한 개의 서생으로 일찍부터 시서를 공부하여 얼마쯤 예의를 알았고 충성과 효도로써 평생의 표준을 삼았으며 사람들에게 마땅히 할 일을 함으로써 몸 가지는 바른 길을 삼았던 바 벼슬길에 나서자마자 도리어 나라 망하는 액운을 만나 고국에 달이 찬데 좋은 재목들이 도리어 도리(桃李)로 변하고 공산에 바람이 요란하여 오동나무가 쓰지 못할 잡목으로 변할 줄을 어찌 알았으리까.”

▨… 앞의 글은 고려가 망하자 영남 땅 구미 금오산에 숨어들어 조선왕조의 부름을 사양한 ‘야은 길재’가 새로운 재상에게 답한 글(한글 역·이은상)의 일부이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삼은으로 불리우는 야은은 조선왕조의 왕이 거듭해서 출조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한사코 이를 거절하였다. 야은은 심지가 청렴하고 조용하여 세상의 의욕에 팔리지 않고 항상 담백하였다고 후대의 사람들이 기록을 남겼다.

▨… 야은은 나라가 망하는 세월의 어지러움 때문에 좋은 재목들이 도리로 변하고 오동나무가 잡목으로 변하는 사태를 개탄하였다. 야은 이후 600년의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달라졌지만 좋은 재목들이 도리로 변하고 오동나무를 잡목으로 변하게 하는 세월의 어지러움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들이 앙갚음 때문에 채신사다운 꼴을 마구잡이로 드러낸다. 입으로는 성령을 목청껏 외치면 서로 교단을 어지럽히는 일들을 서슴치 않는다. 아무리 남의 눈의 티는 보아도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하지만 욕설이 정의가 될 수 없음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좋은 재목들이 도리로 변하고 오동나무가 잡목으로 변하고 있다. 이 꼴은 도대체 누가 빚어낸 것인가?

▨… 서울신학대학교의 총장 후보군이 7명이나 된다고 한다. 학력과 경력으로는 모두 할만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다. 그러나 물어보자. 총장이라는 직위가 교수들의 최종 목표인가. 37세에, 대학 총장, 11개 수도원의 원장이라는 출세를 이뤄냈던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총장이라는 이름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좋은 재목이 도리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야은의 가르침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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