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울의 3차 선교 여정 중 사도행전 20장 7~12절의 아주 황당한 사건 가운데서 큰 도전을 받게 된다. 드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날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할 말도 많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바울이 이제 여러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가지게 되어 일종의 철야 부흥회를 하게 됐다. 장소는 윗 다락이다.

잘 알다시피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게다가 등불을 많이 켰다고 했으니 실내 산소를 얼마나 많이 잡아먹었겠나? 추운 겨울 춥다고 문을 꼭꼭 닫고 가스 불을 켜 곰탕같은 걸 푹 과봐라. 나중엔 산소가 모자라 퍼랬던 불꽃이 벌게진다. 그렇게 실내에 산소가 적어지면 하품이 싹싹 나오고 졸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 창가에 걸터앉았다가 그만 ‘어-어-어- 쿵’하고 떨어지더니 ‘꽥’하고 죽고 말았다. 아니 이럴 수가? 강사인 사도 바울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야 말로 말씀 충만 해서 설교를 했는데, 그 은혜스러운 시간에 사람이 졸다 떨어져 죽은 것이다.

모두들 놀라고 흥분해서 ‘유두고야! 아이고 이를 어째? 누구 인공호흡 하는 사람 나와 봐라! 에이! 은혜 받으러 와서 이게 웬일이야? 도대체 하나님이 계셔 안계셔?’ 다들 안달복달 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그러나 이때 바울은 어떠했나?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행 20:10)”

바울은 그 청년 위에 엎드렸다. 정말 당황되고, 놀라고, 돌발적인 상황 앞에서 그저 바울은 본능적으로 그 청년 위에 엎드린 것이다. 아니 이건 또 무슨 희한한 자세인가? 그러나 이 모습이야 말로 바울이 말씀 충만한 능력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인 것이다. 바울은 이곳 드로아에 오기 전 한 2년 동안을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열심히 말씀으로 제자를 양육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렇게 충만했던 말씀이 이런 위급 시에 본능적으로 능력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행동은 구약의 엘리야나 엘리사가 죽었던 아이를 살릴 때 했던 행동이었다(왕상 17:21, 왕하 4:34).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다. 정말 말씀 충만으로 평상시 무장하면 그 어떤 어려운 순간이나 큰 결정할 일들 앞에서 본능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평상시 말씀으로 무장치 않으면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딴에는 ‘자! 곧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고 외치며 본능적으로 검을 쏴-악 뽑았는데, 에게게… 그만 사과 깎는 과도가 나오는 게 아닌가? 더 심한 경우엔 손톱깎이에 달린 손톱 다듬는 칼이 나오는 거다.

그때 후회하지 말고 우리도 바울처럼 평소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해서 이순신 장군이 든 것 같은 양쪽에 날선 긴 칼을 본능적으로 빼어들고 사탄과 죄악을 능히 이길 수 있어야겠다.

권선형 목사 (서울강남지방·은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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