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경(沈信景)의 출생과 성장

1910년 한일합병으로 5백년을 지탱해 온 조선이 멸망했다. 일제(日帝)는 한반도를 무력으로 장악하고 백성을 식민화했고,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일본인 통감정치를 시행했다.
한반도 백성들이 망국(亡國)의 슬픔 속에 허탈해 있던 1915년 4월 10일에 함경남도 단천군 단천읍 두언대리에서 농업을 하는 청송 심씨 길현 씨의 5형제 중 장남으로 신경(信景)이 고고성을 지르며 태어났다. 아기는 살결이 희고 귀공자의 모습이었지만 약간 허약한 듯해서 그의 부모는 어려서부터 보약을 다려 먹이는 등 건강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부모의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6살 때 마을의 서당에 가서 천자문(千字文)을 배웠고, 8살 때 읍에 있는 공립보통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한글과 함께 일본어도 배웠다. 그래서 1928년 그의 나이 14세에 보통학교를 졸업했지만, 고등보통학교(중학교)에 진학하려면 100킬로나 떨어진 성진으로 가야했으므로 단천에 사는 가정에서는 엄두도 못 냈다.

단천은 함경남도 동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허천강을 이용한 수력발전소와 마그네슘 생산지로 유명했다. 그는 그곳의 마그네슘제련소에 입사하여 매일 하루에 세 번씩 교대하면서 일하는 등 고달프게 살았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날이 갈수록 일이 손에 익어 그는 그곳에서 무려 12년 간 재직했다. 그는 그곳에서 생애에 3가지의 큰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한 가지의 질병과 잊을 수 없는 두 가지의 큰 혜택이었다.

질병은 마그네슘 탄광에서 나오는 먼지로 말미암아 기관지와 폐질환으로 몸이 약해진 것이다. 당시 직장의 설비가 열악하여 많은 직원들이 기관지병이나 폐병으로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는 날 때부터 몸이 허약한 편이었는데, 이 제련소에서 일하므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렇지만 두 가지의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나는, 그가 이곳에서 전도를 받아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이다. 평소 그와 매우 친한 친구가 그가 일하는 제련소에 입사했는데, 하루는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예수를 믿어야 한다며 전도를 했다. 그는 처음 들어 본 예수라는 분에 대해 친구의 말을 자주 듣다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어느 주일 오전에 그는 친구를 따라 교회에 처음으로 갔다. 새로운 의식에 따라 드리는 예배가 신기했다. 모두 함께 부르는 찬송가가 재미있어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었고, 특히 목사님의 설교에 깜짝 놀라며, 일본 사람이 듣지 않는가 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교의 내용은 400년 동안 애굽의 압박을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기쁨으로 달려갔는데, 우리 민족의 희망은 오직 예수를 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설교를 들으며 생전 처음으로 잃어버린 조국을 생각했고, 그래서 그의 가슴이 설레었다. 그는 당장 예수를 믿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의 나이 17세, 1932년 가을이었다.

또 하나는 징집 면제의 혜택을 받은 것이다. 1937년 중국의 북경에 군대를 진입시켜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많은 군인을 필요로 하자 조선의 청년들까지 징집했다. 1938년 그가 23세가 되었을 때 그의 친구들이 일본 군대에 강제 징집되었지만, 마그네슘은 전쟁 물자로 아주 필요한 것이어서 마그네슘제련소의 직원인 그는 군대의 징집에 면제가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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