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신대 총동문회가 올해의 서울신대인상 수상자로 고 황경찬 목사를 선정했다. 서울신대인상 수상자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또 얼마나 많은 서울신대인들이 참여해서 선정하는지, 그 구체적인 선정방법은 모르지만 교단에 이름이 알려진 지명도나 존경도를 고려한 것이라면 일부의 반론도 예상할 수는 있겠지만 무난한 선정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 그 무난한 선정이라는 목표 때문에 해마다 고인들의 명부를 들추고 있겠지만….

▨… 죽은 자가 존경받기도 쉽지 않겠지만 산 자로 존경받기는 더더욱 어렵다. 우리의 현대사는 일제와 6.25 한국전쟁, 4.19와 5.16, 군사정권의 독재와 광주민주화운동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뼈아프게 가르쳐 주었다. 수유리 4.19 학생의거공원이나 망월동 광주민주화공원에 서서도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 그 때문일까.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모두 거둬들였다. 총회장이나 지방회장을 거친 이들에게 ‘증경’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만 존경하는 마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어르신’이라는 말을 기계적으로는 입에 올리지만 그것은 다만 나이 듦에 대한 형식적 대접일 뿐이다. “목사님, 장로님”의 님 자가 존경보다는 오히려 냉소적으로 쓰여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살아있는 자는 아무도 존경하지 않으니 서울신대인상 수상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찾을 수밖에 없나보다. 살아있는 자는 누구도 존경하지 않으니 자기 자신도 존경받을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 교단의 목사들에게 살아있는 우리 교단의 목사들 가운데 존경하는 분의 이름을 꼽으라면… 그 결과는 예측조차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선후배를 향해 마구 욕설을 내뱉는 풍토에서 누가 누구를 존경하고 존경받을 수 있겠는가.

▨… “말은 행동을 가리지 못했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했다. 한갓 시끄럽게 성현의 말씀을 즐겨 읽었지만, 허물을 고친 것은 하나도 없다. 돌에다 써서 뒷사람을 경계한다.”(허목, 「허미수자명」, 번역·정민) 조선 후기의 학자가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스스로에 대해 내린 평가이지만 ‘성현’이란 글자를 ‘성경’으로 바꾸면… 부끄럽다. 돌에다 하나님이 써주신 동판이 있은들 무슨 소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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