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최대명절인 부활절을 맞는다. 죽음은 인류 최대의 공포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는다는 섭리를 거스릴 수 없어 절망해야 했다. 21세기 최첨단 의학기술도 연명에 불과할 뿐 죽음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죽음문제는 종교의 영역이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최대현안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인도에 커다란 무덤만을 남기고 죽어, 불교도는 불타의 무덤경배를 최대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며, 무슬림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있는 마호메트 무덤순례를 생애최대의 소원으로 여길 정도이니 죽음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는 서기 29년에 유대 예루살렘 성 밖 아리마대 요셉의 돌무덤에 장사되었다가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였다. 따라서 기독교는 타 종교와 엄연한 차별성이 있고, 동시에 우월성과 절대성이 있는 생명의 종교이다.
나사렛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그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메시야임이 천하에 증명되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무려 13차례나 눈으로 보고 만난 제자들의 힘찬 증언과 순교자들의 증인에 의해 생명의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계속 전파되어 생명과 소망의 역사로 전환되어 갔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자연현상이 아니고, 우연적 현상도 아니다. 절대자 하나님이 개입하신 초자연적 현상이요 신비이다. 이 신비로운 초자연적 능력이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덧입혀지는 은총이다. 그래서 병든 양심이 소생하고, 도덕적 타락을 회복시키며, 인격을 변화시켜 새사람, 새 피조물이 되게 하여 새로운 사회를 이루어 가신다.
한국기독교는 부활절 종교의 특색이 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가 한반도에 입국함으로 시작된 복음이 불과 선교 1세기가 지난 오늘, 6만의 교회 1천만의 성도와 2만 여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는 제2의 선교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는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부활신앙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이기고 승리했듯이 한국기독교는 40년간 일제의 잔인한 박해와 1950년 6. 25 공산주의 핍박을 순교자들의 피로 극복하고 국가의 경제성장과 민주정치가 함께 성장하도록 일조한 것도 부활신앙을 덧입은 생명력 때문이다.
W. M 베어드는 “전도할 때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소식을 전해야 한다. 부활이 빠진 전도는 복음이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한국교회의 전도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저조한 것은 교회의 위기이다. 생활전도도 좋고 관계전도도 좋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소식을 확신으로 선포할 때 부활의 생명이 전달된다. 부활신앙은 불신과 불의, 죽음을 초극하는 강력한 권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이번 부활절을 맞아 부활신앙으로 더 한층 무장하여 사회를 더욱 도덕적이고 생명력 있는 믿음의 사회로 성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