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공동수도에서 물지게로 물을 길어 나르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아무 때나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정해 그 시간 외엔 아무리 공동수도라 해도 물을 받을 수가 없었으니 물 나올 시간쯤이면 이미 공동수도 앞에 물통들이 장사진을 치곤 하였다.
집안의 둘째인 나는 물지게를 도맡아 져야 했다. 첫째 아들은 공부도 잘 하고 장차 집안을 이끌어 나가야 되니 허드렛일을 하면 안되고 막내는 귀엽고 이뻐하여서 막내라 안되고, 둘째인 난 공부도 지지리 못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천상 물지게를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언덕 위의 공동수도에서 물을 지고는 집안 항아리에 채우는 그 일이 그때는 무척 싫었다. 공동수도 집에 가만히 앉아 돈을 받고 수도꼭지만 틀고 잠그며 물통에 물을 채워주던 그 사람이 그땐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지금도 가끔 재난현장에 소방차나 급수차가 와서 물을 공급하는 장면을 TV로 보고 있자면 물통을 길게 드리운 채, 차례를 기다리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이 난다.
상수도 시설이 좋지 않던 그 시절, 땅속 깊이 파이프를 박아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용하기도 하였다 시원한 물을 끌어올려 식수나 허드렛물로 혹은 수박이나 참외를 담가놓아 냉장고를 대신했으며 아무리 더워도 펌프 옆에 엎드려 등목을 하면 소름 돋을 정도로 시원해지기도 하였다.
이 때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붓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부른다. 영어에서도 이 물은 ‘Calling Water’ 즉 ‘물을 부르는 물’이라 부른다. 마중물은 한 바가지 정도의 적은 양의 물이지만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샘물을 솟아오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단지 적은 한 바가지의 물로…
마중물은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많은 물을 끌어 올려 놓고 자신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마중물은 버려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마중물로 인하여 많은 샘물이 솟아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갈증을 해소하는가 말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한다면 먼저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사랑을 원한다면,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대접 받기를 원한다면, 무엇인가를 원한다면 먼저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 늘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준비해 놓고 살아가자. 그리고 열심히 펌프질하며 살아가자. 콸콸 샘물이 끊이질 않게 말이다. 임의진 시인의 ‘마중물’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우리 어릴 적 작두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대면 그 물이
땅속 깊이 마중 나가 큰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세상이 점점 각박해 질수록 마중물 같은 사람이 그리워진다.
오늘도 마음의 펌프 옆에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준비해 놓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