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설교를 하고 막장에서 광부로 살다

오다는 동굴에서 충만한 은혜를 받았고 쌀이 떨어져 주을온천에 내려와 십자가가 있는 건물을 찾아갔다. 교회로 들어섰더니 며칠 전 산에서 만난 전도사가 강단에서 뛰어내려와 오다의 손을 꼭 잡으면서, “잘 왔소, 오늘 밤 수요일기도회에 말씀을 전해주시요”라고 했다. 오다는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강단에 올랐다.

30여명의 교인들이 기대어린 눈으로 오다 전도사를 바라본다. ‘아! 드디어 막다른 골목이구나. 하나님, 한국말로 설교할 수 있도록 능력주세요’라고 기도하자 순간 가슴이 뜨거웠다. 더듬거리며 읽던 한글성경이 신기하게도 줄줄 읽어지는 것이었다. 약 1시간 정도를 한국말로 설교를 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담임전도사의 요청으로 철야기도회를 인도했다. 은혜가 크게 임했다. 일본인 전도사가 산기도하고 방언의 능력을 받았다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다음날, 담임전도사를 따라서 본교회인 청진 신암동 장로교회로 갔다. 담임전도사는 오다 전도사를 산에서 만난 일,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담임목사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오셔서 감사합니다. 전도사님께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해주세요. 100명의 신자가 모입니다”라고 권했다. 이리하여 오다 전도사는 한 달 동안 그 교회의 새벽기도회의 강사가 되어 로마서를 강해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오다 전도사는 한국어가 능통해졌고 성도들도 은혜를 받았다.

오다는 어대진과 경성 등으로 왕래하며 능통한 한국어로 설교했다. 오다 전도사의 소문이 함경도 일대에 퍼졌다. 노회에서는 오다 전도사를 내쫓아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부인회에서 만들어준 떡을 배낭 속에 가득 넣고 여비도 받아 신암동교회를 나왔다.

오다 전도사는 함경도 장풍리 탄광의 광부가 되어 300미터나 되는 갱내에 들어가서 석탄을 캐냈다. 어느 날 낙반사고로 막장에 갇혔다. 칠흑 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누구 없어요?”하고 소리쳤더니 바로 옆에서 “나 여기 있소!” 신음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칸델라 등을 비춰가며 기어서 오다 곁으로 왔다. 나이 마흔살의 박 씨였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지 아니겠지!’하는 믿음이 생겼다.

시간이 좀 지나자 희미하던 칸델라 등불이 꺼진다. 박씨는 “아이고, 아이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오다는 그런 박 씨에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박 씨가 나 예수쟁이 전도사와 같이 죽으니 행복하게 생각하세요”하고 위로했다. 박 씨가 물었다. “천국이 정말로 있는 것입니까?”, “정말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지 가르쳐주세요”하면서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 오다는 박 씨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우리 기도합시다. 우선 무릎을 꿇어요.” 오다 전도사는 박 씨의 손을 꼭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둘은 밀폐된 공간에서 산소부족으로 정신을 잃었다. 가물가물하는 의식 속에서 “거기 누구 있어? 이 파이프 끝에 입을 대고 있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더듬어 파이프가 손에 잡히자 그 끝에 입을 갔다대었다. 시원한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옆에서 축 늘어져 있는 박 씨의 목을 간신히 팔로 괴어 끌어 입에 파이프를 대줬다. 얼마 후에 “푸우”하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돌아왔다. 13시간 만에 그들은 구조되었다. 박씨는 “하나님이 살려주셨다”고 간증을 하면서 감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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