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6:24)
오래전 일입니다. 종합병원 창구 직원이 얼마나 불친절한지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가 목에 십자가를 걸고 귀에는 십자가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십자가를 떼고 근무 하든지….
십자가는 목에 거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귀에 다는 악세사리는 더 더욱 아닙니다. 십자가는 등에 지는 것입니다. 아니 등에다 지고만 있어도 안 됩니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주님이 가신 길, 비록 그 길이 고난의 길이지만 그 길은 구원의 길, 부활의 길, 승리의 길이기에 따라 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십자가의 첫째의 의미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머물러서는 아니됩니다.
솔직히 내가 십자가로 죽었다고 고백하고 외친다고 죽어집니까? 나를 십자가에 목 박고, 그래서 나도 내가 죽은 줄 알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십자가에서 내려와 피를 질질 흘리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원수를 갚고, 한을 풀고 오히려 처음보다 더 악해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십자가는 죽음과 함께 생명의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새 사람으로, 내안에 계시는 주님과 함께 생명의 믿음과 구원자의 사명의 삶(갈2:20)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진정한 옛 사람의 죽음이 의미와 가치있는 일이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비유로 처음 사람이 회개함으로 청소되고 그러나 비어 있으면 그의 나중은 처음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된다고 하셨습니다(마12:45). 컵속에 있는 공기를 빼내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할 수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간단한 방법의 하나는 물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기는 저절로 빠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죽음으로 머물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길-사랑의 길, 구원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데서 완성이 됩니다.
십자가는 생각 깊이 머물러 있어서만도 안 됩니다. 나의 가슴 속에 커다란 감흥으로 느껴진다 해도 안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자에게만 진정한 구원이고 부활이고 승리가 됩니다. 학생은 늘 공부 잘하자는 생각으로 충만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지 않을까요? 불량 학생들도 공부에 욕구는 강렬하답니다.
문제는 생각과 소원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밤새워 생각하는 것보다 단어 하나 외우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면, 그리고 그 은혜의 감격에 젖어 있으면 믿음이 좋고 대단한 줄로 착각합니다. 그것이 무조건 잘못 된 것이 물론 아닙니다. 그런데 생각과 마음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 문제 중에 정말 큰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생각만 하셨다면, 예수님이 우리 구원을 소원만 하셨다면 우리가 은혜의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요?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예수님을 보내 주셨기에, 십자가에 죽어 주셨기에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고로 십자가의 능력은 삶입니다(고전 4:29).
아! 왜 우리는 십자가를 자꾸 잊고 살까요? 생각만 하고 가슴에 품고만 있을까요?
십자가는 삶이 구원이요 부활이요 하나님 나라의 누림인데, 그리고 만사의 해결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