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굴 속에서 신앙수련을

탈진한 상태로 광주일본교회를 찾은 오다는 담임 다나카 목사에게 도움을 받게 되었다. 다나카 목사는 정신을 차린 오다에게 연유를 듣고 충고를 했다. 한국인에게 전도하려면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일본제국과 천황폐하에 대한 지조를 파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다는 이 일로 밤낮으로 매달려 기도했더니 응답이 왔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고민이 해결되는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나카 목사는 오다에게 서울에 가면 미국선교사 게일 목사를 만나라면서 소개장과 돈 2원을 손에 쥐어줬다. 오다는 거의 먹지 못한 채 걸어가다가 폭우를 만나 굴다리로 들어갔다. 나병환자들의 거처였다. 그들이 먹다 남은 밥으로 배를 불리고 그들의 틈에 끼어서 잠에 취했다. 천신만고 끝에 오다는 24일 만에 서울에 도착하여 게일 목사의 집을 찾았다.

게일 목사는 거지 행세로 찾아온 오다를 보자 약초정 일본인교회의 요시가와 목사를 찾아가라며 메모쪽지를 주었다. 메모에 적힌대로 약초정 일본인교회를 찾아가니 하마다 장로가 맞아줬다. 그 집에서 시키는 대로 목욕하고 그 집에서 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여독이 풀리자 오다는 저녁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깊은 잠에 빠졌다. 오다는 약초정교회의 잡다한 일을 하면서 보통학교 1학년용 조선어독본으로 한글을 익혔다. 한글성경을 읽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한국인에게 제대로 전도하기 위해 시골오지에 가기로 결심하고 서울역에서 제일 먼 함경도 성진가는 차표를 샀다. 성진에서 내려 무작정 걸어가다가 한겨울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골서당이었다. 희미한 관솔불 아래서 아이들이 ‘가갸 거겨’하고 한글을 익히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얼어 죽기 직전에 마을사람들이 발견하고 이곳 학성면 서당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서당에 훈장이 없었고 오다는 그날부터 스스로 훈장이 되었다.

오다는 가난한 숯쟁이 마을에서 동고동락하며 전도하려는 생각에 두 달 만에 서당을 떠났다. 성진으로 나와서 나남을 거쳐 주을온천에서 쌀 한 말과 소금을 사서 짊어지고 숯가마 마을이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온종일 올라갔으나 칠흑 같이 깜깜한 밤이 되어 동굴에 들어가서 묵었다. 그곳은 호랑이 굴이었다. 4월인데도 눈이 녹지 않은 설경, 안개 자욱이 쌓인 계곡의 맑은 물이 선경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는 호랑이굴에 머물기로 하고 이곳에서 ‘갈라디아주해’ ‘일본어성경’ ‘한글성경’을 읽어가며 석 달 동안 기도를 계속했다.

어느 날 아침, 냇가에서 밥을 짓는데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다가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고 물었다. “예,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남자는 “아, 크리스천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남자는 오다의 손을 잡으면서 “저는 주을에 있는 조그만 교회 전도사입니다. 교회가 가난하여 이 산에 들어와서 숯을 구워 생활하고 있습니다. 내 숯가마는 저 위에 있습니다”하고 자기소개를 한 뒤에 “산에서 내려오면 꼭 우리교회에 와서 설교해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산을 내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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