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1:12~14)
신발을 만들어 파는 두 경쟁사가 있었습니다. 이들 회사가 아프리카 오지에 영업사원을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유능한 두 영업사원은 각각 시장조사에 나섰는데, 아직 문명생활을 접하지 못한 오지 사람들은 모두들 신발은 커녕 맨발로 생활하고 있음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제각기 자기 회사에 전보를 쳤습니다.
먼저 A회사 영업사원의 전보내용입니다. “원주민은 모두 맨발, 도저히 신발 팔릴 가능 없음." 그러나 B회사 영업 사원의 전보 내용은 이렇습니다. “원주민은 모두 맨발, 크게 유망함. 신발 급송 바람."
여러분 생각에는 두 회사 중 과연 어느 회사가 아프리카에서 성공했겠습니까?
여러분, 세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리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내용과 질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부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온통 세상이 미워지고 마음에 분노가 부글부글 끓게 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고 마음에 감사와 행복이 싹트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리앗을 바라볼 때 그는 너무나 몸집이 거대한 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사시나무 떨듯이 두려워 떨며 감히 저항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야, 저 골리앗 몸집 한번 되게 크구나 ! 저렇게 몸집이 크니 내가 돌팔매질을 하면 영락없이 맞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자신만만하게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가며 돌멩이를 날리자 생각한대로 골리앗의 그 큰 이마에 명중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그 큰 몸집을 바라볼 때 "야, 표적한 번 크고 좋구나!"하는 대담하고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우리 앞에 다가오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문제를 헤쳐나갈 수도 있고, 반면 그 문제로 인해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여러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과의 차이는 시각에서 잘 나타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 어려운 상황을 자신의 지혜나 경험을 통하여 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상황이 자신의 한계에서 풀지 못하는 문제라고 생각되면 그때부터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 속에 빠져 탄식과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치더라도 결코 희망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믿음의 시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여러분, 사도 바울은 선교사역을 행하면서 너무나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때로는 돌로 맞기도 했고, 태장을 맞기도 했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위험이 늘 그를 뒤따랐습니다. 만약 바울이 그가 처한 상황과 형편만을 바라보았더라면 그는 실망하여 일치감치 선교사역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상황과 형편만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역사의 운행자가 되시고 심판자가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오늘이나 내일 나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의 삶이 인생과 역사의 심판자가 되시며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어떠한 환란과 어려움 가운데도 항상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인생의 삶에 있어서 나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떠한 시각으로 그것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신 바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하는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