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7:1~13)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분명히 내가 바라는 나와, 현실의 나와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래적인 나는 어떤 것인가? 내가 바라는 나는 무엇인가?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에 대한 질문은 이제 밖으로 향하게 되고, 자연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 결과 자연과학은 발달했고, 물질문명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사람들은 아직도 정작 알려고 했던 나 자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수한 철학과 사상들이 있지만 인간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될 뿐입니다.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첫째는 아무것도 희망할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1, 2절).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기계처럼 바쁘게 돌아가지만 결과는 영적 공허입니다. 누군가 의로운 사람이 있기를 바라고, 정직한 사람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서로 물고 뜯기며 서로의 허물만 말할 뿐인 세상입니다.
예언자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부와 권력을 누리는 각계각층의 부패현상을 더욱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3, 4a절). 관리들은 값나가는 것 아니면 받지도 않으며, 재판관들은 뇌물을 주어야 재판을 하고, 집권자는 멋대로 억울한 선고를 내리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부패된 사회는 신뢰와 믿음을 파괴시킵니다(4b-6절).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바로 불신풍조 때문입니다. 서로 간에 불신이 있게 되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서로 나눌 수 없습니다. 서로 배울 수 없습니다.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신의 결과는 바로 파멸입니다. 이런 세상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죄와 탐욕과 욕망이 난무하도록 그대로 두심으로써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심판의 와중에서도 우리는 은밀한 하나님의 숨은 손길을 발견하게 됩니다(7절). 모든 희망이 무너져 버린 곳에, 추악한 인간의 죄악상과 스스로 뜯고 찢겨 결국 멸망으로 치닫는 곳에, 그야말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 같은 그러한 상황 저 뒤쪽에 예언자 미가는 은밀히 서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요, 손으로 만지는 것도 아니요, 귀로 듣는 것도 아닌, 인간의 모든 오감과 경험을 넘어선 믿음의 눈으로써 발견하는 하나님입니다.
예언자는 구원을 희망하는 간절한 기도를 여호와 하나님만이 들으시고, 또 이루어주신다는 확고한 신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를 씻어주시고, 의롭다 여기시며, 나를 인도하여 광명으로 이끄시고, 공의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나에게서부터 시작한 진실한 질문은 세상을 향하게 되고, 세상을 향한 진정한 질문은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질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해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요 14:6).
우리 모두가 주님께로 향할 때,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고, 나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아무리 삶이 어려워도 우리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속이고 대적한다 하더라고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고백합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7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