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지방회에서는 교단 굴지의 교회가 지금까지 소속했었던 지방회를 탈퇴하고 이웃 지방회로 소속을 옮긴다고 거사하더니, 남녘 어느 지방회에서는 지방회를 둘로 나누는 일도 감행되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교단에서는 되는 일도 없지만 안되는 일도 없다는, 알 만한 사람들이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유언비어처럼 떠돌더니 마침내 그 실체가 하나 둘 얼굴을 내밀고 있다.

▨… 설마하니 유언비어가 진실로 둔갑하는 사태야 일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우리 교단이 법에 대해선,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해석과 적용이 판을 치는 형편으로 전락하고 있다 하더라도 교단이 두 조각으로 쪼개질지도 모른다는 유언비어 만은 유언비어로 남게 해야 한다. 교단의 혼란을 부추겨서 목전의 이익을 탐하려는 자들의 유언비어만은 막아야 한다.

▨… 그러나 아니면 말고 식의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사태는 또 어찌하랴. 교단 안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면, 아무 일에도 관여하지 말고, 앞장서지 말고, 교단의 일과는 아예 담을 쌓으라는 말이 무슨 표어처럼 번지고 있다. 이 목사 저 목사, 이 장로 저 장로가 마구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모습은 도대체 누가 의도한 것인가? 누가 연출하는 잔혹극인가.

▨… 일찍이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소네트’를 통해서 가슴이 섬뜩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진실한 사랑을 맹세하면, 나는 그것이 거짓인 줄 알더라도 그대로 믿는 체할 것이다. 세상의 거짓을 모르는 멍청한 젊은이로 보이기는 싫으므로. 나는 여인에게, 여인은 나에게 서로 거짓을 지껄인다.” 셰익스피어도 도스토예프스키 못지 않게 인간 심리에 대하여 냉혹하다.

▨… 법이 교단 행정의 절대적인 잣대일 수는 없다. 법보다 사랑이 우선하는 것이 성결교회의 자랑스런 전통이다. 그러나 법이 무너지면 사랑 또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정의 없는 사랑은 맹목이라고까지 했겠는가. 더 이상 교단 지도부가 법집행을 유야무야해선 안된다. 목사님, 장로님들이 마구 상처받는 사태에 대해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라.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교단이어선 안 된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