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8:31~32)
예수께서 체포되어 재판을 위해 그 당시의 유대의 총독이었던 로마제국의 장군 빌라도 앞에 섰을 때, 빌라도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네가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그러자 빌라도가 매우 회의적으로 즉각 되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진리가 무엇이냐?’세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던 대 로마제국의 장군이요, 유대의 총독이요, 지식인이었던 빌라도가 묻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냉소적으로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리에 회의적이었던 빌라도는 일설에 의하면 로마로 돌아가 결국은 자살을 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
이때에도 유대인들은 오히려 되묻습니다. 마치 빌라도가 예수께 되물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질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아무한테도 종살이를 한 적이 없는데 그 무슨 말씀입니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니라.” 그러므로 죄에서 탈출해야만 우리는 자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으로부터의 자유”와 함께 “~을 향한 자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으로부터의 자유”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자유입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속박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더 적극적으로 “~을 향한 자유”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먼저 요구하십니다. “내 말에 거하면”이라는 요구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자유하게 되는 첫 번째 조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예수님의 참다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는 “배우는 자”를 뜻합니다. 제자는 “증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증인은 때로는 목숨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제자가 되고 증인이 될 때에 우리는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 진리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참된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학식으로 가르친 적도 없고, 지식으로 가르친 적도 없습니다. 제자들과 더불어 먹고, 자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함께 거닐고 세상을 보며, 그리고 우리를 구원시키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삶 자체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희생과 용서의 삶이었으며,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군병들과 무지한 무리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기도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자리에 실천된 가치, 살아있는 진리의 삶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빌라도처럼 되묻지 마십시오. 진리는 여러분에게 오신 그리스도 예수, 바로 그 분의 모든 희생적 삶과 사랑에 보여졌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허물을, 고통을, 수고를, 질병을 용서하심으로 없이 하여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용서와 사랑하심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모범을 따라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전합니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내 제자이다. 그러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