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스쿨을 다니며 고학으로 자수성가

김순모는 거의 한 달 동안 집안 식구들 몰래 예수교회에 다녔다. 천주교와는 달리 예수교회는 친절했고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어 좋았다.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그렇지만 천주교회에 가지 않은 것이 탄로 나서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매를 맞고 혼쭐났고, 천주교회가 싫어서 이웃 마을의 장로교회에 다녔다고 자백을 했다.

“이 놈아, 예수교는 이단이야! 우리 가문이 4대째 내려오는 천주교 신앙전통을 마음대로 바꾸다니, 이 괘씸한 놈!” 할아버지가 분노하자, 아버지가 그의 종아리를 매로 때렸다. “우리 가문에 어쩌다 저렇게 고집 센 놈이 생겼는고? 천주님을 안 믿으면 망할 터인데.”

그 말에 순모가 얼른 대답했다. “목사님의 말씀이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어, 그래?” 할아버지가 놀라셨다. “이 자식이 감히 할아버지의 말씀에 토를 달다니.”라며 아버지가 또 매를 때렸다.

“애비야, 그만 둬라. 이놈아, 천주교를 믿어야지, 예수교를 믿으려면 집에서 당장 나가!”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그는 각오한 듯 할아버지께 머리를 숙여 큰 절을 했다.

“할아버지, 제가 1년만 있으면 소학교 졸업합니다. 그때까지만 집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래? 네가 영 그럴 생각이면 그렇게 하마.” 그래서 순모는 소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집안일을 거들다가 주일에는 따로 이웃마을 장로교회를 다녔다. 그는 비록 매를 맞았지만, 신앙의 자유를 얻은 것이 기뻤다. 그렇지만 소학교를 졸업한 후, 집을 나가 어디서 무엇을 할런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주일에 미국 선교사가 와서 서툰 조선말로 설교를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큰 길에서 전도했다. 그는 청년들과 함께 선교사를 도와 길에서 찬송도 부르고 북도 쳤다. 그래서 그는 선교사와 친하게 되었다. 그는 성격이 밝고, 누구와도 친하게 되는 재주가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씩 교회의 설교도 하고, 전도하러 오는 선교사에게 그는 자기의 딱한 형편을 말했다. 선교사는 그가 마음에 든다며, 사리원에 선교부가 경영하는 중학교가 있으니, 소학교를 졸업하고 그 학교에 오라고 했다. 그는 걱정이 가시고 희망에 부풀었다.

일 년 후에 순모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에게 겨우 차비를 얻어 생전 처음 기차를 타고 사리원으로 갔다. 그리고 예수교가 운영하는 명신중학교를 찾아 선교사를 만나서 학교에 입학했다. 선교사의 배려로 학비는 면제받았지만, 그는 다른 학생과 방을 하나 얻어 자취생활을 하면서, 신문배달을 해야 했다. 그는 고학을 통해 사회생활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주일에는 사리원장로교회에 다녔다. 거기서 세례를 받고 주일학교 교사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집사가 운영하는 양복점에 가서 기술을 배웠고 2년 후에 고향 재령읍에 가서 양복점을 차렸다. 그는 재령읍장로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그는 26세 때 같은 주일학교 교사인 최연봉 처녀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그는 사람들과 잘 사귀는 특기가 있었다. 상대를 높여주고 칭찬의 말을 하면 누구나 좋아했다. 그의 친절과 솜씨로 사업이 잘되었지만, 집에서 일만하는 것이 싫었다. 밖으로 다니면서 일하는 직업이 없을까 그는 기도했다. 마침 어느 사람의 소개로 조선생명보험회사의 신의주 영업사원으로 가게 되었고 신의주에서 성결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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