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시인 김춘수) 객체인 대상을 향해 이름을 불러 줌으로 부름을 받은 대상은 불러준 이에게 ‘무엇’이 되고 불러준 이에게 응답하는 그는 다시 ‘의미’가 된다. 그래서 관계가 이루어진다. 현대인에게 이름은 식별 기호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숫자, 명단(名單)에 불과할 뿐이라는데….  

▨… 에덴 동산에서 아담의 배필은 ‘여자’이며 ‘아내’였다. ‘그 여자’는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도 동참하게 했다. 그로 인해 인간의 내면에는 부끄러움과 두려움, 저주 받은 땅에서의 삶은 고통과 수고, 그리고 죽음이 찾아 왔다. 에덴에서 추방되는 그 순간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생명을 주는 자(하와)라 불렀다.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통과 죽음을 오게 한 아내를 희망과 생명의 이름으로 불렀다.

▨… 교단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과 소통의 심각성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비리가 있다면서 밝혀야 한다는 이도 있고, 내 눈에는 티뿐이지만 남의 눈에 들보가 있으니 빼야 한다며 나서는 이들과 집단도 있다. 총회나 본부의 리더십을 가진 이들의 무책임 또는 무능함을 탓하기도 하고, 그런 리더십을 선출한,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의식수준을 비하하는 자조적(自嘲的) 탄식을 토해내기도 한다.

▨… 어설픈 바느질로 부끄러움을 가리려던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죽 옷을 지어 입혔다. 죄는 인간이 지었지만 죽음은 죄 없는 어떤 동물이 대신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처벌’로 인간은 수치와 두려움에서 자유와 기쁨과 희망을 얻게 되었다. 가죽을 남긴 죽음, 즉 희생이 있는 곳에 은혜가 있고 용서와 평안이 있다. 정죄와 비난보다 자신의 희생으로 덮어주고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때이다.

▨… 경인(庚寅)년 호랑이의 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虎死留皮)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人死留名).”라고 한다. 오늘날 인간성을 상실한 이름, 화려한 장식에 불과한 껍질이 얼마나 많은지. 죽음을 선고받고도 아내를 ‘생명’이라 불러 어머니의 이름을 남기게 한 아담의 순수한 희망과 신뢰, 자신을 온전히 던져 희생의 가죽으로 이 부끄러운 현실을 덮을 사람을 기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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