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아름다운 데이트

초겨울의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침시간이었다. 밤잠을 설치고 새벽에 기상한 우리부부는 들뜬 마음으로 아침밥상 앞에서 감사기도를 드렸다. 모처럼 강원도 단풍놀이를 가게 되고 주문진에서 싱싱한 생선회로 오찬을 하게 된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오늘의 행사는 서울중앙지방 내 원로목사 부부들의 늦가을 소풍인데 우리 부부가 초대를 받았다. 조찬을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갈 뜨게 된 것은 밥 생각보다 가을소풍의 기대가 부풀대로 부풀어서이다.

집사람은 여느 아침과 동일하게 부지런히 설거지를 하고 나는 어쩌다가 인심 쓰듯이 하는 청소를 한답시고 청소기를 운전하고 서둘러 집합장소인 중앙교회를 가기위해 집을 나섰다. 집합시간이 오전 8시라 조금 빠른 듯 했지만 약간 추운 날씨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아 발걸음이 가벼웠다.

무악제 전철역으로 향하면서 노부부의 사이좋고 행복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기에 슬그머니 집사람의 손을 잡았다. 아직도 집사람은 내가 손을 잡으려면 뿌리치고 수줍은 듯, 멋쩍은 듯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오늘도 역시 한 발짝 떨어져서 한바탕 싸움한 부부처럼 걸어서 전철역에 도착했다.

3호선 전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고 동대문역에서 하차하여 중앙교회 앞까지 도착하면 대로 가에 정차한 서대문교회 버스에 승차하도록 초청장에 친절히 기록되어 있었다.

전철에 승차하니 원로 목사 소풍가는 날의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하며 밤 잠 설친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가 집합장소에 도착한 것은 서두른 탓인지 30분 전이었다. 중앙교회 골목길을 훑어보고 버스가 정차 할 만한 자리까지 도착했으나 버스도, 일행들인 원로목사도 나타나지 않았다.

집사람이 너무 서둘러서 왔다고 불평 할듯하여 버스가 정차 할 만한 곳 돌계단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기다리자고 어린아이 달래듯 달래면서 계단에 앉았다. 신문지를 깔았지만 차가운 냉기는 나들이 차림의 얇은 바지를 통해서 궁둥이에 전달되어 한기를 느꼈다.

물끄러미 길 건너편 “서울복음교회”를 건너다보면서 앉아있으려니군 복무 시절, 가장 친하게 지내던 유병장이 떠올랐다. 유 병장은 복음교회 신자였고 지금은 군산복음교회 장로로 충성하고 있기에 군 제대한지 40년이 지났어도 지금까지 교분을 나누며 군산에 가면 유 장로 댁에서 밤을 꼬박 세우며 군 생활 추억을 이야기 하던 유광상 장로가 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보니 약속시간인 8시가 거의 되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약속장소가 바꿨나? 집합시간이 변경되었나? 그래서 시계를 다시 보니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면서도 연락이 안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반갑게도 전화를 받았다.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 안심은 잠깐, “아니, 소풍취소된 것 모르나! 날씨도 춥고 연세들이 많아서 요사이 유행하는 신종플루로 인해 취소되었는데 L목사가 모두에게 연락하기로 했는데…” 화가 치밀었지만 감정을 짓누르고 태연하게 “괜찮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여보, 소풍이 취소되었데, 집으로 가자” 하면서 집으로 되돌아오는데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동대문 전철역에 다달았을 때쯤 연락책임을 맡았던 L목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취소된 것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세 번이나 되풀이 하면서… K목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바이기에 태연하게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라고 대답했다.

오늘 강원도 늦가을 소풍은 취소되었지만, 그 나라에 가는 날 욕심 없이 살다간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이세상의 소풍 끝나는 날 참 아름다웠더라고” 나도 주님에게 그렇게 보고 하리란 다짐을 하면서 “여보, 미안해 추운날씨에…” 계면쩍게 웃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뿌리치던 손을 살며시 내어주기에 어색하나마 손을 꼭 잡고 귀가했다. 이날 소풍은 우리부부의 늦가을의 아름다운 데이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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