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5년 존 스튜어트 밀이 국회의원 입후보자로 나섰을 때였다. 언젠가 밀이 “영국의 노동자들은 거짓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도 늘 거짓말을 일삼는다”라고 썼던 글이 상대방 후보로부터 공격 타깃이 되었다.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그런 글을 쓴 일이 있느냐고 따졌다. 밀이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분명히 그런 글을 쓴 일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글에는 더더욱 책임이 따른다. 말은 잊혀지기라도 하지만 글은 어떤 형태로든 역사에 남기 때문이다. 읽고는 그냥 잊어버려도 좋을 심심파적의 글이라면 모르지만,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면 그 글에는 자신의 인격이라는 책임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고 인구에 회자되었고 그만큼 글 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있었다. 소년 시절부터 그 한길만 달려와 그의 솜씨는 점점 빼어나게 되었고 그의 손으로 벼리어진 칼들은 명검으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대장장이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불세출의 명검을 만들고 싶었다. 잘 베어지도록 그것만을 목표로 벼리고 벼리었다. 그러나 그 칼은 잡는 자마다 자제할 수 없을 만큼 살의를 느끼게 하여 ‘요도 무라마사’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일본의 전설이다.

▨… 똑똑함으로만 글을 쓰면, 많이 배운 것으로만 글을 쓰면 그 글은 ‘요도 무라마사’처럼 글쓴이의 가슴과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총회장까지 지낸, 우리교단의 대표적인 목회자 중의 한 사람이 목회하는 교회에 괴문서가 뿌려졌다. 내용과 수법이 너무 치졸해서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당하는 이가 목사라는 사실이 서글프고 왜 이런 일이 재발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헛된 이름을 팔며/ 보이지 않게 허물을 늘려가는 하루 또 하루/ 지킬 수 없는 말들을 하며/욕되게 사는 삶 팔아 양식을 벌고/ 욕되게 쓰는 글 팔아 목숨을 이어가는/ 차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도종환·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진실을 호도하는 글들이 난무한다. 글 쓰기가 새삼스럽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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