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권사 내외가 읍내 다른 교회로 옮겼다. 개척 후 처음 우리 교회에 나와서 4년째 우리 교인이었다. 그들이 떠났는데 별 느낌이 없다. 정이 없고 쌀쌀맞은 목사인가보다. 양평에 전철이 개통되면 서울로 예배드리러 가겠다고 김 집사가 툭 던지는 말에 ‘그러라고!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그들은 조금은 의외라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곁에 있던 정 권사가 “우리 김 집사가 목사님한테 어깃장을 놓느라고 한 말인데”라고 변명했을 때 왜 집사가 목사에게 그런 어깃장을 놓느냐고 일축해 버린 것은 그냥 튀어나온 말이 아니다. 주일마다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어쩔 수 없이 예배드리려고 나와 앉아 있는 그들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고 맥 빠지는 노릇이었나 보다. 교회를 옮겨 가서라도 그들이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50년 넘게 신앙생활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 타교단인 서울의 큰 교회에서 직분도 받고 봉사했다는 그들이 병들고 하던 가게도 처분하고 빚쟁이 되어 이 시골동네로 쫓기듯 사글세 방 하나 얻어 들어와서 우리 교회에 나왔다. 오전 10시도 되기 전에 중풍으로 쓰러져 한쪽이 불편한 몸을 한 정 권사와 그런 아내를 데리고 온 김 집사의 어색한 표정이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 말을 잃은 사람처럼 전혀 표정이 없던 그는 작은 우리 교회에 나와서 말도 찾았고 일도 찾았다. 식구가 없던 교회에 그들 노부부를 주일마다 만나는게 행복했었다.
매주 없는 솜씨지만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점심을 같이 먹고 언제나 꼭꼭 잠그고 있는 그들의 초라한 월셋방을 두드려서 자주 먹을 것을 전해주기도 했었다. 구역예배도 마다하고 수요예배도 마다했던 김 집사가 매일 새벽예배까지 나와서 예전에 다쳤던 허리를 안수해 달라고 할 정도로 신앙이 자라는 듯하기에 겨우 최저 생활할 정도만큼 주는 아들들의 생활비지만 십일조 생활을 하라고 강권했다. 십일조를 드린다는게 부담이 되는지 못들은 척 버티더니 어느 주일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자 그들은 순종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병아리 오줌같이 오던 큰아들의 생활비가 끊겼다고 했다. 실직을 했단다. 작은아들이 주는 몇 푼으론 모자란다고 김 집사가 일을 해야겠다고 하기에 두 손 들어 찬성했다. 헌 리어카 하나 사서 고물 줍는 일을 시작할 때 기도해주며 얼마나 격려했었던가?
그러나 더운 여름, 땀을 흘리며 리어카를 끌고 가는 김 집사를 볼 때나 추운 겨울바람 부는 거리에서 그를 만나면 얼마나 목사의 마음이 아팠었는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수입이 점점 늘어가자 그들은 교회에서 멀어져 갔다. 십일조가 차츰 늘어가자 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 부부는 매일 가계부 쓰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하면서 새벽예배는 너무 피곤해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많이 힘들면 집에서 기도하라고 했더니 그 시간에 리어카 끌고 나가 새벽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수요예배도 피곤해서 못나오고 금요 구역예배도 빠지고 주일 오후예배도 점심식사만 하고 그냥 가려고 자꾸 기회를 보더니 주일 오전 예배도 나와서 졸기 시작했다. 이제 주일 예배 드리러 나오는 것도 힘들다며 김 집사가 안 오려고 하는 걸 차가 집 앞까지 데리러 오는데 왜 못가냐고 하면서 남편을 데리고 왔다고 정 권사가 자랑하듯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그날 오후 예배를 마치자 김 집사가 너무 피곤해서 졸린다고 하기에 한마디 했다. 이제부터 수요예배도 새벽예배도 나오라고! 하나님께 드릴 시간까지 다 돈 버는 시간으로 써버리면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나온 말이다. ‘서울로 예배드리러 가겠다고!’
안타깝게 지켜보던 한 성도가 새벽예배 나오라며 권하자 그의 입에서 해서는 안 될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교회 십자가 불빛 보고 사람들이 찾아오겠느냐고?’ 교회 십자가 불빛이 유흥업소 불빛 같다고…. 언젠가부터 주중에도 식사 제공을 받고 물질적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읍내 큰 교회로 가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목사의 권면은 이제 그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얼마 전 아침 산책길에서 산더미처럼 고물을 가득 싣고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가는 김 집사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뒤따라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정 권사와 다리 위에서 딱 마주쳤다.
오! 그대 부부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