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지났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어린 시절에 느꼈던 성탄절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에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그 당시에는 비록 먹고 사는 일이 힘들고 살아가는 환경 자체가 지금에 비해서 뒤떨어져 있었다 할지라도 사람 사는 맛이 지금 보다는 더하였던 시절이었던 같다. 따라서 성탄절 분위기도 좀 더 정겹고 따스한 맛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물론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했었던 탓에 들뜬 분위기도 과열된 면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성탄절을 전후하여 다시 한 번 자기를 돌아보는 모습들은 지금보다 더 하였던 것 같다. 지금은 성탄절이 오든 말든 그저 소리 없이 지나치는 듯한 무관심의 영역이 되어 버린 듯하다. 이는 비단 사회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분위기도 그러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성탄절의 절정은 뭐니뭐니해도 성탄전야예배와 새벽송이다. 성탄전야예배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주일학교와 청소년들의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새벽송의 본질은 예수 탄생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 이에 감사하여 선물을 대접하는 나눔과 섬김의 정겨운 시간이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지 성탄전야예배가 사라져 가고 있다. 새벽송도 마찬가지이다. 도시는 새벽송이 아예 사라져 버린듯하다. 도시의 아파트 문화가 새벽송을 밀어낸 것이다. 이제는 농어촌도 새벽송이 사라져 간다. 새벽송을 돌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도 지난해까지는 세 팀이 새벽송을 돌았지만 올해는 겨우 두 팀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러다가는 봉고차에 스피커를 장착하여 집마다 돌면서 캐롤송을 한 곡씩 틀어주고 돌아와야 하는 지경에 이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하여 성탄절에 나타나야 할 나눔과 섬김의 모습이 더불어서 힘을 잃어가고 있고,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생각은 변화를 낳고, 변화는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는다. 또 습관은 전통을 낳고, 전통은 문화를 낳는다. 결국 생각이 문화를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성탄전야예배와 새벽송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문제는 달라지기 보다는 사라져 버릴 위기에 놓여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성탄절이 예수탄생을 축하하는 기쁨과 축제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기보다는 교회가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고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다는 적신호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제는 성탄전야예배와 새벽송을 대신하여 이룰 수 있는 신앙적 문화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여야 할 때이다. 정녕 아기 예수탄생의 기쁨을 나누고 섬길 축제의 대안은 무엇일까? 2009년의 성탄절 밤을 잠 못 이루게 한 작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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