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42:1~3)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아십니까? 태어나면서부터 동굴에 갇혀 있는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의자에 붙들어 매여있어서 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입구 방향으로 동굴을 가로질러 사람키만한 벽이 있고 그 뒤에 불이 타고 있으며 이 사이에 인간들이 지나 다닙니다. 이때 인간들은 인간이나 동물의 모습을 한 다양한 인형을 들고 지나다니는데 이 사물들의 그림자가 동굴의 벽에 비춰지게 되고 거기 지나다니는 인간들의 소리도 메아리쳐 갇혀있는 사람의 귀에 들리게 됩니다.
이들은 이런 모사를 참된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 중 한 사람이 동굴을 빠져나와 실제 현실을 보고 다시 동굴로 돌아와 그 묶여 있는 자들에게 밖의 실제 모습을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들은 그것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동굴의 비유를 통해 플라톤이 나타내려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현상계와 실재계의 대비입니다. 즉 동굴 안에 갇힌 죄수는 바로 우리들인 것이며 우리가 실제라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동굴 안 그림자와 같은 모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것들의 한계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욥의 이야기를 잘 아시지요? 욥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인내의 사람 욥, 끝까지 참고 견딘 욥의 믿음, 이러한 것들이 떠오르나요?
욥기서의 시작은 의로운 사람 욥이 고난을 받으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욥의 친구들과의 대화, 그리고 하나님의 대답, 다시 축복 받는 욥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욥의 고난과 축복의 결말로 이야기를 기억하곤 합니다.
그러나 욥기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욥의 고난과 축복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대답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38장부터 42장까지 계속되는 하나님의 대답은 ‘~을 너가 아느냐?’ ‘~을 할 수 있느냐?’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욥과 친구들과의 대화를 들으시고 대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비밀스런 일들을 열거하시며 욥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에 대해 ‘욥 네가 어떻게 이러한 일들을 이해할 수 있느냐?’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곧 진리이고, 정의이기 때문에 인간인 너희들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믿음을 지켰더니 복을 받는다는 것은 욥의 결과이지만 그 원인과 결과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므로 인간인 욥과 친구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인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음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동굴 안에 갇힌 자들이 그 안에서 보는 그림자와 들리는 소리에 의해 동굴 밖을 상상하듯 우리 인간들도 인간 수준의 경험과 얇은 지식으로 하나님까지 판단하고 정의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욥기서를 통해 말씀하시는 진정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우주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충만한 이 세상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 안에 갇힌 존재가 인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지 항상 기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얇은 지식 속으로 하나님을 끌어내려 그 분의 전지전능하심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제한함으로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분의 전지전능하심과 공평하심 언제나 정의만을 준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늘 마음에 새기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 스스로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