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다 쥬지의 한국전도 여행

나카다 목사 일행은 통역이 없었기 때문에 부산에서 배에 올라온 한국인들에게 한자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했다. 서울에 도착한 나카다는 여러 교회에서 설교할 기회를 가졌다. 나카다는 약 500명이 모이는 감리교회에서 영어로 설교하고 선교사가 통역했다.

그들은 한국인 통역을 세우고 말을 타고 서울을 떠나 북쪽의 전선으로 향했다. 12마일에서 14마일마다 일본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는데 나가타 목사 일행은 그들에게 기회가 닿는 대로 전도지를 배포하고 옥외집회를 열었다. 또한 밤에는 한국인교회를 방문하여 집회를 인도했는데 보통 아홉시에 저녁식사를 하고 열시에 집회를 시작하여 12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종종 교회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낮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전도지를 가지고 일본군인과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개성을 거쳐 6월 14일에 일본군과 러시아 군이 전쟁을 치른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의 장로교회는 매주 1800명의 신자가 모였고 경제적으로 완전자립하고 있었다. 나카다는 평양의 북쪽 40~50리에 있는 순안에서 독자적으로 전선을 향했다.

6월 23일에는 마부의 부주의로 말이 강 가운데로 굴러 떨어졌다. 겨우 짐을 건져 큰길에 풀어놓고 햇볕에 말렸다. 그때 구경삼아 모여든 주민들은 재미가 있는 듯이 떠들썩하였다. 나카다 목사는 조금은 창피했으나 젖은 몸과 옷가지와 짐을 말리면서 자기를 깨끗하게 해주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했다.
박천의 어떤 교회는 새로 건물을 지었는데 러시아군과 일본군이 마굿간으로 사용하여 파괴되었기 때문에 신자들이 매우 낙심하고 있었다.

나카다는 그곳의 선교사들과 힘을 합쳐 며칠 동안 집회를 인도하고 헌금을 했는데 교회건물을 수리할 수 있도록 250불의 돈이 모아졌다. 신자들은 성전을 재건한 옛날 이스라엘 백성처럼 찬미하며 기뻐했다. 180~290명이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회를 열었는데 멀리 떨어진 시골사람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성결의 은혜를 받았다.

그 뒤 선천과 의주를 거치면서 전도여행을 계속했다. 나카다 목사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에 진입하여 안동에 있는 일본군야전병참을 방문했다. 1000여명이나 되는 부상병들이 야전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30여명의 러시아 포로들도 있었다. 그들을 위로하자, 일본군인도 러시아 포로도 매우 기뻐했다.

안동에서 전쟁터로 가려했으나 전선 가까이에는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또한 경제적인 힘도 없었고 전도지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압록강을 다시 건너 압록강하구연안 용암포로 왔다. 그곳에서 나카다목사는 병원에 수용된 환자들을 위문하고 노방설교를 했다. 장소가 술집 마당이었는데 술집 주인이 강대상 대신으로 나무로 만든 큰 술통을 빌려주어 그것을 강대상으로 썼다. 또 술집 주인이 설탕물을 타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대접하여 뜻밖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 청중 300~400명이 성령의 놀라운 은혜를 받고 전도 책자를 돌릴 때에 밀물처럼 몰려와 감사함을 표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계속>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