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다 쥬지의 성결체험

한국성결교회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은 1907년이다. 하지만 한국에 최초로 성결복음이 전해진 것은 1904년 동양선교회 창시자의 한 사람이며 일본인 성결운동가인 나카다 쥬지(中田 重治) 목사를 통해서다. 그는 일본군인들을 위해 만주전선을 찾아 한국을 방문했으며 전도활동을 펼쳤다.

나카다 쥬지는 1870년 10월 27일 일본 아오모리 히로사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지방 사무라이 출신으로 술을 좋아하다가 쥬지가 5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홀어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굶기도 했고 나쁜 장난도 많이 했다. 그러나 큰 형의 권유로 교회에 따라다니다가 마음을 잡고 17세에 히로사께 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다음 전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1887년 도쿄 에이화(英和)학교 신학부에 입학했으나 나까다 쥬지는 유도에 열중했다. 자연히 그는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었고 1891년 겨우 졸업했다. 하지만 교장의 특별조치로 전도자 가면허장을 얻어 전도자로 파송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순교의 각오로 전도에 열중했다. 노방전도를 할 때에 자기를 비웃거나 전도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유도로 내동댕이쳐 땅에 눕혀버리기 일쑤였다. 그의 열정적인 전도정신이 인정되어 1894년 4월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는 광산촌에서 교회개척전도를 시작하면서 전에 없이 충만한 성령의 세례를 사모하였다. 결국 그는 미국 시카고의 무디성서학원을 찾아가 “성령을 받으려고 성서학원에 찾아왔다”며 입학했다.

그는 무디성서학원에서 참된 능력은 성결에 있음을 깨닫고 성령체험을 하고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성서학원 근처 그레이스감리교회의 예배에 출석하여 자기 뒷자리에 앉은 카우만 부부를 만났다. “나는 일본에서 유학 온 나카다 목사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성결의 은혜를 받으려고 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내일 저녁 목사님을 우리 집에 초청하겠습니다.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보인턴 박사가 오셔서 성결에 대한 집회를 합니다. 오실 수 있습니까?”, “감사합니다. 내일 방문하겠습니다.”

다음날, 나카다는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성결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이날 밤이 인연이 되어 카우만 부부와 나까다의 교제가 돈독해지고 동양선교에 뜻을 같이하게 되었다. 카우만 부부는 ‘전신기사선교단’을 통해 나카다의 학자금을 대줬고 ‘전신기사선교단’은 나카다를 일본선교의 대표자로 세우고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무디성서학원을 단기로 마치고 미국의 주요도시를 순회한 후 뉴욕에서 영국으로 가는 ‘미시간호’라는 배에 올랐으나 여비가 없었다. 마침 탄 배가 소떼를 수송하는 화물선이어서 그는 카우보이로 지원했다. 나중에 그가 목사임이 알려져 주일날 선원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인도했는데 타락했던 기관사 한 사람이 회개하고 나카다를 극진히 대접하기도 했다. 런던에 상륙한 그는 성결운동가 박스턴 토마스의 집을 찾아가 많은 호의를 받고 1898년 여름에 런던을 떠나 9월에 일본으로 귀국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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