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3:13~14)

가나안농군학교의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손봉호 교수님께서 리더십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엔 그 정도의 강의는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너무나 평이했기 때문입니다. 책 한두 권 보고 정리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청중들처럼 저도 그 강의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결론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에게 유익한 강의였던 것 같이 보였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왜 그랬을까?’생각하다가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그분의 강의는 평범한 강의였지만 그 강의를 하기까지 그분이 쌓아온 내공 즉 공부한 것과 삶이 집약된 것이기에 힘이 있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준 강의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내공이 쌓여 있으니 힘이 있고, 확신 있는 강의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때의 시대상황이 어떠했는지 본문 다음에 나오는 15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이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어떤 것인지 알 수도 없고, 갖가지 비진리들이 진리처럼 넘쳐나는 속에서 살아가고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럴 때 그 비진리와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1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첫째는 배워야 합니다. “배운다” 라는 동사 ‘만다노’는 기본적 의미에서 ‘마음을 어떤 것에로 향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서 결국 ‘어떤 것에 익숙해지다, 경험하다’라는 곳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결국 사람은 배움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과 사고의 과정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는 결국 확신있는 메시지나 삶을 말하거나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진리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배움을 통해 진리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물론 교육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이어서 나오는 16절 말씀을 보면 성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뿐 아니라 많은 지식을 배워서 익히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둘째는 배우면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배움의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확신은 매우 중요합니다. 확신은 사상이 되고 철학이 됩니다.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족한 것은 확신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과 진리를 확신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확신이 없으면 사람들을 결코 움직이게 할 수 없습니다. 승리의 확신이 없으면 군인은 전쟁에 뛰어들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휘관은 승리의 확신을 심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배움을 통한 확신은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는 확신이 생기면 거하게 됩니다. NIV에서는 “배워서, 확신하고 있는 진리를 따라, 계속 생활하라”고 하고 있으며 표준새번역에서도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즉 ‘거한다’는 것을 ‘산다’는 것과 같습니다. 확신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삶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삶을 바르게 세울 수 있는 것은 바른 배움을 통해서 확신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감정이나 흔들리는 지식을 결코 우리의 삶에 세울 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세가지는 승리의 삶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단계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한 번은 고향 목사님께서 학교를 방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저는 수업시간인데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탁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왜 공부시간에 나와 있느냐?’고 물으셨고, ‘열심히 공부해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 말씀을 대단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목회의 후반기에 들어서 세상 말로 “내공”의 부족을 느끼면서 지금은 생전에 계시지 않는 목사님의 말씀이 귓전을 울리곤 합니다. 이는 배우고 확신을 갖는 기간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현시대는 배우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기회와 장이 마련되는지 모릅니다. 열심히 배워서 확신을 갖고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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